[식품명인체험 8]
제주도 김희숙 식품명인 ‘고소리술 체험’
모든 과정 손으로 하고, 일체 첨가물 넣지 않는 술 체험객, 밀누룩 딛고 소줏고리 증류과정도 지켜 봐
화산재로 이뤄진 ‘뜬땅’. 그래서 흙의 힘은 약하고 물빠짐은 빨라서 논농사가 힘든 곳이 제주도다. 게다가 여름 장마가 지나면 추석 전부터 몇차례 태풍이 오는데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곳도 척박한 제주도다.
육지보다 궂은 날씨는 재해재난 극복을 위한 신화와 전설로 연결돼 다양한 민속신앙으로 발전했다. 봉제사접빈객을 위해서도 술이 필요했지만, 민속신앙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술은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육지와 너무 떨어져 있어서 모든 물건을 자급자족해야 했던 제주도는 술도 직접 만들어야 했다. 쌀이 없는데도 술을 빚어야 하니, 부족한 땅심에서도 잘 자라는 좁쌀과 보리쌀과 같은 잡곡이 주인공이 되었다. 이것으로 빚어 발효시킨 술이 ‘오메기술’이다. 그리고 그 술을 증류한 것이 ‘고소리술’이다.
농림식품부 지정 제84호 김희숙 식품명인이 지난 주말 서울 북촌에 있는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 ‘고소리술 체험’행사를 가졌다. 글의 서두는 본격 체험에 앞서 김 명인이 설명한 고소리술의 등장배경이다.
김 명인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제주도의 무형유산인 ‘고소리술’을 빚는 농민이자 양조 장인이다. 직접 농사를 짓는 까닭은 예전엔 흔했지만 지금은 귀해진 잡곡을 직접 키우기 위해서다. 자신의 밭에서 자란 좁쌀과 보리, 밀을 수확해서 ‘오메기맑은술’과 ‘고소리술’을 생산하고 있다.
제주도의 다양한 문화를 설명하던 김 명인이 체험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날의 주제였던 ‘고소리술’의 이름에 관해서였다. “‘고소리’가 무엇인지 아는 분 계신가요?” 체험객 중 한 사람이 “족제비과의 동물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김 명인은 이런 답이 많이 나온다며 말을 이어갔다.
“고소해서 고소리술이냐, 고사리로 만든 술이냐, 그리고 지금처럼 ‘오소리’를 떠올리며 답하는 분들이 많다”며 “고소리는 소줏고리의 제주방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술 이름 중에서 유일하게 술빚는 도구를 이름으로 가진 술이라고 덧붙였다.
제주도 문화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김 명인은 준비한 소줏고리에 술덧을 넣고 증류를 진행했다.
증류소주가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김 명인은 사이 시간을 이용해 누룩 딛기 체험을 이어갔다. 먼저 시범을 보인 김 명인은 참가자들이 직접 누룩을 딛도록 체험을 유도했다.
김 명인의 누룩은 밀로 만든다. 예전에는 보리로 만들었는데, 술에서 쓴맛이 나서 밀로 바꾸었다고 한다. 순서는 이렇다. 거칠게 빻은 밀에 물을 넣어 손으로 뒤적인다. 물의 양은 준비한 밀의 양의 20% 정도. ‘사락사락’ 만지다보면 손에 글루틴이 뭉쳐지며 끈적이는 느낌이 온다. 손으로 한웅큼 쥐어서 뭉쳐지면 물이 고루 섞인 것이다. 이제 누룩틀에 넣고 발로 정성껏 밟으면 된다. 너무 엉성하게 밟으면 2~3일 뒤 쪼개진다. 김 명인은 돌맹이처럼 단단하게 딛을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열을 내면서 누룩이 발효할 때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룩 체험이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 소줏고리에서 증류액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똑똑 간헐적으로 증류주 방울이 맺히듯 떨어졌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빈도와 속도가 빨라졌다. 초류를 건너 뛰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술을 받았다. 알코올 도수 70도 안팎의 술이다.
바로 증류했지만, 알코올 타격감이 없다. 점점 알코올 도수가 떨어져도 타격감보다는 휘발되는 느낌이 강하다. 술의 온기가 사라지면 고소한 곡물향이 느껴진다. 보리와 좁쌀의 고소함이다. 육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쌀로 만든 증류소주와 다른 향미를 가지고 있다.
김 명인은 세째 아들과 함께 ‘제주술익는집’이라는 양조장을 성읍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다. 증류는 주로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한다고 한다. 조용한 시간에 혼자서 소줏고리를 지켜보며 증류를 해야 좋은 술이 나온다는 것이 새벽 증류의 이유다. 보통 5개 정도의 소줏고리의 불을 조절해야 하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고 한다.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술 중에 이처럼 소줏고리로 내리는 술은 ‘고소리술’이 거의 유일할 것 같다. 그리고 보리와 조를 섞어서 만든 술도 이 술이 유일하다.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하고, 첨가물을 일체 넣지 않는 술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가치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