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CSM 변동 여전…뒷심 떨어진 무해지보험 원칙

금융당국 ‘로그-선형모형’ 원칙 발표 각사 특수성 인정해 타모형도 허용키로 차이 공시하겠다지만…“생존이 더 문제”

2024-11-08     박영준 기자

‘부풀리기’ 논란의 무·저해지환급형보험(이하 무해지보험)의 계리가정 원칙이 마련된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원칙모형을 사용하면 대다수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 하락이 점쳐진다.

이번 계리가정 변동으로 보험사의 옥석이 가려질 전망이다. 원칙모형을 쓸 보험사로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메리츠화재가 예견된다. 다만 원칙모형 이외의 계리가정 사용도 열어두면서 비원칙모형 사용을 고려할 회사로는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롯데손해보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원칙모형 예외 허용키로>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무해지보험 해지율에 사용할 계리가정은 ‘로그-선형모형(이하 원칙모형)’을 원칙 적용하기로 했다. 단, 각사의 경험통계 등 특수성을 감안해 다른 모형인 ‘선형-로그모형’ 또는 ‘로그-로그모형’ 등 다른 모형(이하 비원칙모형)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이에 보험사의 회계이익 부풀리기를 막겠다는 정책 결정에 뒷심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해지보험은 해지율을 낙관적으로 가정할 경우 보험계약마진(CSM)이 과대 계상된다. 낙관적 가정으로 보험료는 낮추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회계 마법’을 부렸다는 평가가 나왔던 배경이다. 이는 보험금 지급 급증으로 인한 보험사의 부실을 초래해 보험계약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이다.

원칙모형을 사용하면 낙관적 가정을 사용했던 보험사의 최선추정부채(BEL)가 늘면서 CSM은 감소, 킥스비율이 악화된다. 원칙모형에 따른 BEL 증가는 생명보험사보다 손해보험사에 상대적으로 클 전망이다. 반면 비원칙모형을 선택한 회사는 한시름 놓게 됐다.

대신 금융당국은 비원칙모형 사용 회사에 합리적인 채택 근거와 계리법인의 외부검증을 철저히 하도록 하고, 원칙모형과 CSM·BEL·지급여력비율·당기순이익 차이 등을 모두 공시토록 한다. 비원칙모형 사용에는 일종의 ‘창피’를 주겠다는 의미다. 특히 상장 보험사에겐 치명적인 결과가 될 수 있다. 상당한 파급력의 계리가정 선택지에 보험사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물량보다 판매기간서 파급 갈려>

대한금융신문이 보험개발원에 요청한 무해지보험 현황에 따르면 원수보험료(누적 매출) 기준 삼성화재가 1조1877억원으로 상위 손해보험사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였다. 전체 보장성 원수보험료(5조7190억원)의 21%를 차지했다.

DB손해보험도 1조22억원의 원수보험료를 기록, 무해지보험 비중이 19%에 육박했다. 뒤이어 메리츠화재 13%(6227억원), 현대해상 11%(5969억원), KB손해보험 10%(4422억원) 순이다.

DB손보의 경우 삼성화재와 비슷한 비중이지만, BEL 증가에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원칙모형보다 낙관적 가정이 사용된 무해지보험은 지난 2021년 이전에 체결된 계약들로 평가된다. ‘무해지보험의 보험료 산출시 사용하는 해지율(적용해지율)은 보험부채 평가 때 사용하는 해지율(최적해지율)보다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보험업감독규정이 생기기 이전이다.

삼성화재가 무해지보험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때는 IFRS17 도입 전후인 지난 2022년부터로, 타사 대비 상당히 늦었다. 생보사의 단기납 종신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무해지 판매량이라 해도 BEL 증가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문제는 중소형사다. 상위사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난 2017년부터 무해지보험 판매에 매진해왔다. 중소형사서 무해지보험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롯데손해보험(36%)에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된다. 흥국화재(20%), 한화손해보험(16%) 등도 BEL 증가가 상당할 전망이다.

한 보험사 상품 관계자는 “BEL 상승을 부르는 문제계약의 대다수는 과거 계약”이라며 “유지기간 동안 동일한 해지율(단일률)을 사용해 보험료를 산출한 보험계약을 많이 판 회사일수록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비원칙 모형, 생존 직결>

대한금융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형 손보사는 로그-선형모형(완납시점 수렴점 0.1%) 적용 시 BEL이 1조4000억원 증가하지만, 선형-로그모형 적용 시 절반인 7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알려졌다. 매각을 앞둔 중소 손보사는 선형-로그모형 적용 시 7000억원 수준의 BEL이 4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후문이다. 

해당 대형 손보사는 원칙모형 사용시 올 상반기 기준 킥스비율이 15%포인트(p) 가량 하락하게 된다. 해당 중소 손보사는 원칙모형 적용시 킥스비율이 80%대로 하락,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된다. 반대로 비원칙모형 적용시 100%를 가까스로 상회한다. 사실상 중소형사의 비원칙모형 사용은 생존이 걸린 문제인 셈이다.

대다수 손보사가 규모만 다를 뿐 모형 선택에 따라 절반에 가까운 BEL 변동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금리하락, 할인율 강화 등으로 킥스비율 악화가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원칙모형을 선택할 보험사를 찾기가 더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킥스비율이 올 상반기 기준 권고치인 150%를 살짝 웃도는 현대해상(169.7%), 한화생명(162.8%), 교보생명(161.2%) 등 대형사 입장에선 10% 이상의 킥스비율 하락은 상당한 부담이라 비원칙모형 사용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비원칙모형을 사용하는 상위사가 많아질수록 무해지보험의 ‘고무줄 회계이익’ 논란은 잠시 이연됐을 뿐이라는 평가로 남게 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원칙모형이 경험통계와 크게 어긋나는 보험사도 상당하다. 이 경우 원칙모형과 내부모형 사용에 대한 이중관리가 필요해질 것”이라며 “킥스비율 감소를 방어할 수 있거나 경험통계가 원칙모형과 큰 차이가 없는 대형사라면 감수하겠지만, 대다수는 다른 모형을 사용을 고민할 수 있다. 공시 부담 이전에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세훈 수석부원장 주재로 오는 11일 생보 5개사(삼성·한화·교보·동양·메트라이프)와 손보 5개사(DB·현대·메리츠·롯데·흥국) CFO 및 4대 회계법인 부대표 등과 간담회를 가진다.

이 자리에서는 금융당국이 현재까지 공표한 할인율의 단계적 현실화 방안 및 계리가정에 대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우려에 대한 감독 방향 및 당부사항을 전달한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한지한 기자 gks7502@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