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사칭’ 갈수록 진화…처벌법안 5년째 계류

삼성전자 주식 미끼로 활용 종이 계약서로 현혹하기도 사칭 자체로는 처벌 어려워

2024-11-11     박이삭 기자
삼성증권을 사칭한 공모주 사기 계약서. (사진 제공=삼성증권)

증권사를 사칭하는 사기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가운데 각 회사는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현행법상 사칭 행위 자체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삼성증권은 자사 애널리스트를 사칭해 투자를 유도하는 사기가 확인됐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사기범은 이벤트 사칭 사이트를 따로 만들어 투자자를 유인했다. 해당 페이지는 5만원대인 삼성전자 주식을 1만원에 준다고 광고하면서 이름과 연락처를 기재하게 했다.

그렇게 투자자를 모은 뒤 특정 종목에서 높은 수익이 난 것으로 위장하는가 하면, 투자자가 자금 인출을 요청할 땐 세금·수수료 등을 명목으로 추가 자금 입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에는 삼성증권 사칭 ‘계약서’를 활용한 사기 건이 적발됐다. 종이 계약서에 상장 예정인 공모주를 할인 배정한다고 명시해 투자자를 현혹한 것이다.

삼성증권은 지점·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 공식 채널에서만 공모주 청약을 진행할 뿐더러 특별공모·할인공모 등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청약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같은 달 NH투자증권을 사칭한 사기범은 인공지능(AI)을 통해 돈을 준다고 속이다가 NH증권에 적발됐다. 네이버 밴드 단체채팅방 안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AI 투자 기술을 홍보한 후, 투자금에 따라 20~100%의 배당률을 보장한다는 식이었다.

NH투자증권 역시 SNS 채널 등을 이용해 투자 권유를 하지 않는다며 NH투자증권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각 증권사의 대응은 여기서 그친다. 투자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지만 직접적으로 사기범을 추적하거나 후속 조치를 취하진 않는 실정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금융사기로 인해 손해를 입은 피해자만이 고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며 “증권사의 경우 사칭 자체로는 피해를 입증해 내기 어렵다”고 전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투자자 주의를 고지하되 중대한 사안의 경우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한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5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2020년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칭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칭 범죄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법안은 21대 국회가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한 의원은 올해 6월 같은 내용의 법안을 재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인 상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가 개별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며 “사칭 범죄에 대한 법제화도 중요하지만 (사칭 범죄가 일어나는) SNS 플랫폼에서 증권사 직원 여부를 검증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