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달마산에서 바라보는 남해 풍광
남북 종주 내내 바다 바라보는 멋진 코스 붉가시·참가시 등 난대림 식생 보는 재미
나지막한 산이다. 해발 489m. 오르기 힘든 높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산 전체가 쉬운 산이 아니다. 남북으로 길게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산줄기를 타고 8km 정도의 산행을 하려 한다면, 단단히 채비하고 나서야 한다. 깎아지르는 정상부의 바위들이 걷는 이의 발걸음을 잘 놓아주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달마산이다. 해남 두륜산에서 땅끝마을로 이어지는 땅끝지맥의 끝에 있는 산이다. 달마산이 유명한 이유는 ‘미황사’라는 사찰이 있어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룡의 등뼈처럼 솟아 있는 달마산의 정상부 암봉들이 미황사를 보호하듯 병풍처럼 서 있는 모습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출사객들은 사철 미황사를 찾는다. 필자도 단청 빛 다 지워진 고적한 대웅보전을 감싸고 있는 달마봉이 보고 싶어 11월 하순 늦가을이 남아 있는 달마산을 찾았다. 하지만 당분간 원하는 그림을 볼 수가 없다. 현재 대웅보전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대형 가림막에 덮여 있다. 그렇다고 달마산 준봉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줄지어 솟은 암봉의 무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달마산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또 어떤가. 한마디로 인상적이다. 먼바다로 보이는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도해의 섬들은 기본이다. 남쪽을 바라보자. 땅끝으로 치달으며 남해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달마산, 지맥의 끝은 사자봉의 산마루에 모아진다. 달마봉 정상에선 땅끝이 보이진 않지만, 그 앞바다 섬들을 만날 수 있다. 북쪽은 두륜산이 주인공이다. 주변 산하를 호령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산이다. 달마봉의 풍경의 잔재미는 동쪽과 서쪽의 그림이다.
동쪽엔 해남과 다리로 연결된 완도가 있고, 완도의 상봉이 시선을 빼앗는다. 반대편 서쪽은 진도가 누워있다. 육중한 첨찰산(485m)을 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그런데 높이만 보면 안 된다. 걷다가 해가 떠 있는 방향을 보면 어디든 있는 윤슬. 그곳에선 시간을 좀 보내도 좋다. 반짝이는 윤슬은 섬을 삼키기도 하고, 고기 낚는 어선을 포위하기도 한다.
이날 윤슬은 작은 무인도 하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커피라도 한잔 보온병에 타왔다면 그림 한 번에 커피 한 모금을 즐겨도 좋지 않을까.
달마산에는 바다 풍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쪽 산답게 난대림 수목이 울창하다. 동백나무와 사스레피나무, 그리고 참나무와 형제지간인 가시나무도 수시로 만나게 된다. 가시나무는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4형제로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그리고 참가시나무로 구성된다. 제주도 사람들은 예전에 이 나무를 잘라서 초가집 벽면의 뼈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새끼줄로 묶어서 벽을 단단히 세워주는 나무였으니 제주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나무였다.
달마산에선 이중 붉가시나무와 참가시나무를 만나게 된다. 졸참나무, 굴참나무와 같은 참나무와 함께 자라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모두 도토리를 생산하지만 붉가시와 참가시는 두꺼운 잎을 겨울에도 떨어뜨리지 않고 상록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산을 오르는 주된 이유는 주변 풍광을 장악하듯 한 눈에 담기 위함이다. 주변 사물이 명징하게 다가올 때 느끼는 만족감은 무엇과도 쉽게 바꿀 수 없는 희열이다. 그런데 선물은 큰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에서 만나는 새로운 나무는 걷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산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식생을 골고루 담고 있다. 특히 남쪽 산은 상록으로 식생을 보여준다. 걷다가 색다른 나무가 말을 걸어오면 멈춰서 답을 해주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 나무가 왜 그곳에 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더 친근해지는 곳이 산이다.
달마산에선 북쪽 산에서 볼 수 없는 붉가시와 참가시나무, 그리고 동백과 황칠나무를 눈에 담자. 큰 도토리를 내주는 붉가시나무는 농기구로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일을 하는데 산소 발생량이다. 1ha당 12.9톤을 생산한다고 한다. 소나무가 5.9톤이니 두 배쯤 된다. 게다가 탄소 흡수량도 7.89톤으로 중형차 한 대가 1년간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가시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