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현금이 없어요” 한투리얼에셋펀드 일방통보에 투자자 분노

벨기에 오피스 펀드 전액 손실 처리 투자자들, 한투증권 등 판매사 상대 항의 봇물…일선 직원들 고통 호소

2024-12-24     박이삭 기자
지난 18일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벨기에 오피스 펀드 투자자에게 보낸 안내문. 펀드의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명시돼 있다.

벨기에 오피스에 투자하는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펀드 투자자들이 투자금 전액 손실 통보를 받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들은 한국투자증권 등 주요 판매사를 상대로 거세게 항의하는 가운데 한투증권 직원들은 고객 응대에 몸살을 앓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주부터 ‘한국투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의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KB국민은행·우리은행 등은 각 투자자에게 투자금이 전액 손실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이 펀드는 벨기엘의 수도 브뤼셀에 위치한 정부기관(건물관리청)이 임차하는 빌딩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임대료에 바탕한 배당 수익과 자산 매각을 통한 수익을 함께 추구한다. 펀드는 지난 2019년 6월 설정됐고 설정액은 900억원이다.

한투리얼에셋운용은 2019년 9월 오피스 자산 매입을 위해 선순위 대주와 7262만5000유로(1097억여원), 중순위 대주와 1452만5000유로(219억여원)의 대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선순위 대출 만기일인 올해 6월 14일까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이 발생했다.

한투리얼에셋운용은 지난해부터 투자금을 회수하고자 자산 매각·리파이낸싱(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다시 자금을 조달)을 추진했으나 고금리 기조로 인한 부동산 침체에 난항을 겪어 왔다. 펀드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에도 환매가 불가능한 규정 탓에 발이 묶여 있었다.

결국 선순위 대주인 영국 생명보험사 로쎄이(Rothesay)는 지난 17일(한국시간) 선순위 대출금만 회수할 수 있는 가격으로 건물을 강제 매각했다. 이에 따라 중순위 대주(프랑스 AXA 보험사)와 한투리얼에셋운용은 자산 매각에 대한 추가 이익은커녕 투자금 전액을 회수할 수 없게 됐다.

투자자들이 거둔 수익은 반년 간격으로 들어온 배당 수익에 그치게 됐다. 해당 펀드의 누적 분배율(배당률)은 20% 정도다. 1억원을 투자한 투자자의 경우 2000만원의 분배금(배당금)을 받았지만, 1억원을 날리게 되면서 총 8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한투리얼에셋운용이 각 판매사를 통해 발송한 고객안내문에 따르면 한투운용은 “선순위 대주의 담보권 실행으로 투자자산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며 “현지 법무법인을 통해 강제 매각에 대한 이의제기·소송 가능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투자금 회수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순위 대주 측의 강제 매각 과정에서 절차의 흠결·법 위반·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매각한 것 등을 문제 삼아 소송을 진행할 여지가 없을지 해외 로펌을 통해 마지막까지 면밀히 점검할 예정”이라면서도 “법률자문을 통해 적법하게 담보권 행사가 처리됐다고 판단되면 소송 절차를 추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펀드에 1000만원가량의 현금이 남아 있지만 미정산 환헤지 정산차금 채무상환, 펀드가 지급하지 못한 각종 보수·비용 등을 지출하면 실질적으로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현금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은 펀드를 판매한 회사에 대항하고자 규합을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 KB증권이 뉴욕 부동산 펀드 전액 손실 사태에 따라, 판매사 책임 차원에서 원금의 80%를 배상했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현재 투자자들은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는가 하면 금융감독원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관련 민원은 금감원 분쟁조정3국에 배정된 상태다.

해당 펀드의 총 투자자는 2500여명이고 전체 설정액 900억원 중 한국투자증권의 판매액은 590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적합한 절차에 따라 판매된 건 회사의 배상책임이 없다”면서도 “혹시 판매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 등 중요사항을 안내받지 못했다면 배상 사유로 인정될 수 있으니 회사로 민원 신청을 하면 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사태에 대한 노사협의회를 진행했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일선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한 것이 그 배경이다. 노사협의회에선 직원 보호책과 회사의 대응방안이 주로 논의됐고, 한투증권 측은 사태 수습·직원 피해 최소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