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뒷얘기] 윤석열 지운 거래소…엿보이는 위기극복 의지
탄핵안 통과한 후 방명록 철거 불확실성 해소 바라는 속마음
한국거래소가 지난달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명록을 벽에서 떼어 냈습니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 첫 거래일이었습니다.
거래소가 대통령의 방명록을 철거한 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두 대통령 모두 탄핵을 당한 공통점이 있는데요. 불확실성 없는 증시를 바라는 거래소의 속마음이 방명록에서 고스란히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지난 2022년 1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큰 도약을 기원합니다’이란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이 방명록은 그로부터 3년 가까이 거래소 2층 홍보관의 ‘Wall of Honor(명예의 벽)’을 장식했습니다.
거래소에 방명록을 남긴 우리나라 대통령은 총 4명입니다. 지난 1992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축 발전’이란 간단한 문구로 방명록을 남긴 바 있습니다. 1996년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자격으로 거래소를 방문해 ‘축 증권거래소 발전’이라고 썼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방명록은 지금도 홍보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야당 대표로서 거래소에 방문해 ‘신뢰받는 증권시장이 되기를!’이라고 작성했습니다. 2012년에는 대선 후보가 되어 거래소를 찾아 ‘5년 안에 코스피 3000 시대를 열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지만, 결국 홍보관에선 사라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방명록을 걷어낸 자리는 전현직 ‘F4(Finance 4)’ 수장들의 방명록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 아래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년 전 대선 후보 시절 작성한 ‘주가지수 5000를 향해 나갑시다’ 방명록이 있습니다. 아울러 전직 정당 대표 중엔 유일하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작년 8월에 쓴 ‘청년의 꿈, 자본시장의 꿈입니다’ 방명록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들의 염원과 달리 작년 주식시장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공매도 중단·금융투자소득세 폐지·상법 개정·행동주의펀드 등 어느 하나 첨예하지 않은 이슈가 없었는데요. 야심차게 공개된 밸류업 프로그램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비상계엄이 우리 증시를 출렁이게 했고 2024년 코스피지수는 2400이 깨진 채 마감됐죠. 이런 가운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슬픔에 잠긴 상황에서 거래소는 별도의 폐장식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내빈을 초청하고 꽃가루를 뿌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과 대조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전날 개최된 올해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참석자들은 검은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단 채 묵념을 올렸고요. 예년과 같은 축하공연 순서도, 방명록을 쓰는 내빈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래소는 긍정적인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애쓰는 모양새입니다. 이 자리에서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자본시장 관리자로서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지속하겠다”며 “자본시장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