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정적’이라던 벨기에펀드, 전액손실의 비극

2025-02-07     박이삭 기자

‘부동산펀드의 배신’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두 가지 지점에 놀라움을 느꼈다. 먼저 영업점 PB(프라이빗뱅커)의 화술은 놀랍다. 짧은 시간 안에 능수능란하게 거액의 투자를 이끌어 낸다. 이들의 그럴싸한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권유에 위험성은 눈곱만큼도 없다. 건물주가 된 듯한 부푼 기대감이 있을 뿐이다. 또 하나는 해외 부동산펀드 판매에 ‘안정성’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동산펀드와 안정성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란 걸 깨닫게 된다.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한국투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벨기에 펀드)’는 처음부터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한 채 출시된 상품이었다. 국내 투자자의 목돈과 함께 현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빌려 건물에 투자하지만 국내 투자자는 후순위로 변제를 받는다. 선순위 대주가 일방적으로 자산을 처분하면 손 쓸 새가 없는데 그로 인한 전액 손실 리스크는 투자자에게 상세히 고지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가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결국 벨기에 펀드는 전액 손실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앞뒤가 다른 대응 역시 문제를 키우고 있다. 선순위 매각이란 치명적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는데도 상품에 문제가 없었다는 해명을 되풀이한다. 뒤에서는 투자자들에게 배상비율을 제안하며 비판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 상품을 팔았던 일선 직원들은 사측을 향해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상황이 중첩되면서 한투증권과 투자자들은 지리멸렬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증권사가 매번 투자자 민원에 요동하며 춤을 출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해외 부동산펀드와 안정성이 그 자체로 모순된 조합이었다는 점을 한국투자증권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벨기에 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는 애당초 투자자에게 매우 위험한 상품을 무리하게 판 결과다. 그러므로 판매사의 책임이 중대한데 그에 비해 배상비율은 턱없이 낮아 보인다. 과거 ‘업계 최초 판매책임 사모펀드 100% 보상’ 결정을 내세우며 고객에 대한 바른 행동을 어필한 것처럼, 한투증권이 이번에도 대승적 결단을 내리길 기대해 본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