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보호’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입 모아 “대체 불가”

거부권 행사에 야당·금감원·경제단체 한목소리 “핀셋 규제에 불과…일반주주 보호 원칙 필요”

2025-04-01     이연경 기자

상법 개정을 거부한 정부 여당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주주가치 제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1일 국무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직무 수행 과정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한 대행은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취지에는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이 법률안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기업의 경영환경 및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회사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더욱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전체 법인(100만여개)에 적용되는 상법 개정안 대신 적용 대상이 상장법인(2600여개)에 불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은 지난해 국민의힘 윤한홍 정무위원장을 통해 제출된 바 있다.

개정안에는 상장사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과, 물적 분할 뒤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일반 주주들에게 신주 일부를 우선 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러나 야3당과 경제단체, 금융감독원 등은 자본시장법 개정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사회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상법 개정안이) 경영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이라며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된다고 해서 정당한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무시한 채 전횡을 휘두를 때 비로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본시장법 개정’ 대안을 제시한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주장”이라며 “전체 법인 100만여 개에 적용될 수 있는 상법 개정안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은 결국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면피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5개 경제단체(경제개혁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변 민생경제위원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참여연대) 역시 이날 공동논평을 통해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다시 지배주주가 전횡을 일삼던 후진적인 기업 거버넌스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은 합병가액 불공정, 쪼개기 상장 등 일부 주주가치 훼손 사례에 대한 대안일 뿐, 주식회사 이사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으로 주주 충실의무를 도입하는 상법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역시 자본시장법이 아닌 상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강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앞서 야당 주도로 상법 개정안이 의결된 지난달 13일 이 원장은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형태의 의사결정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직을 걸고서라도 (상법 개정안 거부권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2025년 3월 18일 본지 보도, ‘상법 개정’ 찬반 격화…與 등진 금감원장>

이후 지난달 28일 금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그간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상법 개정 거부)은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에너지 소모”라며 “재계에서도 이미 자본시장법 개정을 반대한 바 있고, 국회 논의도 진척이 없었던 상황이므로 효율성이 저해된다”고 밝혔다.

또 “시장에서는 정부의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의지에 의문을 품고, 향후 자본시장법 개정 가능성에도 회의적 시각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라며 “주주 충실의무는 사실상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적용되는 바, 지분이 분산되지 않은 소규모 비상장회사에 대한 적용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감원은 상법 개정안 통과 시 부작용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으로 △경영 판단의 과도한 형사화 방지 △면책 가이드라인 등 안전항으로서의 절차규정 마련 △소송리스크 보호장치(임원배상책임보험제도 등) 정비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대한금융신문 이연경 기자 lyk@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