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19] 창평쌀엿이 치아에 붙지 않고 이물 없는 까닭

갱엿 손으로 늘려가며 공기 넣는 과정, 흰엿 공정 핵심 1990년 유영군 명인 상업화 후 창평면서 생산자 증가

2025-05-03     김승호 편집위원
창평쌀엿 유영군 명인의 전수자인 유수진 씨가 지난 달 11일 창평쌀엿 체험행사를 갖고 체험객 앞에서 흰엿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엿은 한과의 기본재료다. 유과나 강정은 엿이 있어야 만들 수 있고,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청도 만들어진다. 엿은 설탕이 일반화되기 이전까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당원이었다. 하지만 쌀과 조 등의 곡물로 만들어야 했으므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식품은 아니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는 전통 식품이지만, 20세기까지 엿은 대표적인 주전부리 중 하나였고, 어른들의 놀이 도구이기도 했다. 흰엿을 부러뜨려 구멍의 크기로 승부를 겨뤘던 일명 ‘엿치기’라는 민속놀이가 있을 정도였다.  

지난 4월 11일 서울 북촌의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 유영군 식품명인(제21호)의 창평쌀엿 체험행사가 있었다. 유 명인의 딸이자 전수자인 유수진 씨가 진행한 이 날 행사는 갱엿을 흰엿으로 만드는 과정에 집중해서 진행됐다.

창평쌀엿은 엿기름과 쌀로 만든다. 창평쌀엿의 기원과 관련, 유수진 전수자는 세종 임금의 큰형인 양녕대군이 전남 담양으로 낙향해 오면서 수행 궁녀들도 같이 왔는데, 이때 엿 제조 기술이 민가에 전해졌다고 말한다. 이후 창평면의 부호들은 절기마다 엿을 만들었고, 이것이 문화처럼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창평쌀엿을 처음으로 상업화한 것은 지난 2000년 농림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유영군 씨다. 전통 식품의 사업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할 때인 1990년 호정식품을 만들어 쌀엿과 한과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 이후 전통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늘면서 여러 사람이 유 명인의 뒤를 따랐다고 유수진 전수자는 말했다. 

엿만들기는 식혜에서 시작한다. 사진은 유영군 식품명인(제21호)이 유수진 전수자와 함께 엿기름물을 받아 고두밥에 섞고 있는 모습이다. 이 과정을 거친 식혜를 졸여서 갱엿을 만들게 된다. (사진=호정식품)

유 명인의 엿은 엿기름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된다. 엿기름은 겉보리에 물을 흠뻑 줘 이틀 동안 싹을 틔우는데 싹이 1cm를 넘기면 안 된다고 한다. 너무 많이 자라면 당화효소가 사라지고, 싹이 안 틔워지면 당화효소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아 당화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수경재배하듯 물을 주기 때문에 뿌리가 엉겨 붙게 되는데, 이때 관리를 잘못하면 곰팡이가 슬어 엿기름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엿기름 생산 공정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창평쌀엿 만들기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4시에 일어나 전날 만든 식혜의 발효 상태를 확인하고, 8시경 식혜 물만 짜서 모은다. 삭혀진 밥알을 제거하고 당분을 우려낸 물만 오후 4시까지 졸이듯 끓인다. 초반에는 불 조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후반은 누르면 안 되기 때문에 한두 시간 저어주며 불 조절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졸이면 적당한 농도의 엿물이 만들어지고, 형태를 잡아 냉각하면 갱엿이 된다. 

엿이 다 되었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때부터 바로 새로운 공정에 들어간다. 다음날 만들 엿의 재료인 식혜를 담아야 한다. 또한 흰엿도 이때부터 만든다. 완성된 갱엿을 두 사람이 길게 늘렸다 접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이날 체험 행사도 이 작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30분 이상 엿을 밀고 당기며, 때로 수증기를 쐬어가며 엿을 성형한다. 초벌 늘리기가 끝나면 생강과 참깨를 발라준 뒤 다시 엿 늘리기 작업을 해준다. 엿에 맛을 추가하는 과정이다. 

끈적한 엿을 늘리는 작업이니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 이렇게 공기를 집어넣는 과정을 반복해야 엿을 깰 때 ‘바사삭’ 소리가 나게 되고, 치아에 붙지 않고 다 녹은 뒤에도 이물이 남지 않게 된다. 창평쌀엿만의 특징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늘렸다 접기를 반복해서 미색에 가까운 색이 나오면 엿이 완성된 것이다. 가래떡처럼 길게 뽑은 엿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면 된다. 이제 남은 과정은 엿 보관을 위해 콩가루를 묻혀 주는 작업이다. 그래야 엉겨 붙지 않기 때문이다. 흰엿은 간식으로 주로 먹지만, 배앓이가 있을 때 먹어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 전수자는 쌀엿은 매우 귀하다고 말한다. 1kg의 쌀로 작업을 하면 200g의 갱엿을 얻는다는 것. 이처럼 귀했기 때문에 엿은 결혼식 폐백 음식의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과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고, 쌀엿은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한다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