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오피스 투자했다가 ‘쪽박’…이지스운용 변명 살펴보니

124곳 매각 접촉했지만 6건 제안뿐 현지 오피스 불황에 리파이낸싱 난항 임차인 네슬레, 임대면적 축소·리모델링 요구 벨기에펀드 전액손실 감안한 선제 매각

2025-05-29     박이삭 기자
이지스자산운용이 명시한 이지스204호 펀드의 자산가치 하락 추이. 이지스 측은 이로 인한 투자금 가치가 원금 대비 70% 하락할 것이라며, 거래 조건과 환율에 따라 그 가치는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 오피스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04호(이지스204호) 펀드가 70% 이상의 손실을 낸 채 청산되는 가운데, 이지스자산운용이 손절 매각이 최선이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오피스 시장이 침체되고 대출금에 대한 재융자(리파이낸싱)가 어려운 데다 임차인이 시설 개선 비용을 요구한다는 이유였다.

29일 이지스자산운용이 이지스204호 투자자들에게 전날 발송한 개별 안내문에 따르면 “대내외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의 매각이 최선이라는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이지스204호는 지난 2018년 조성된 부동산펀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네슬레 본사 오피스에 투자함으로써 매각 이익을 노려 왔다.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과 우리은행은 총 556억원을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총 124개의 잠재 투자자에게 접촉했지만 총 6건의 매각 제안을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나은 제안을 제시한 매수인과 지난 26일(현지시각)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매매 가격은 6300만유로로 총 매입가였던 9560만유로(선순위 대출금 5300만유로 포함) 대비 약 34% 낮다. 그러나 선순위 대출원리금 상환·매각 관련 용역비·세금·자문 비용·환헤지 계약 정산 비용 등을 제하면 최종 회수율은 원금 대비 30% 아래일 것으로 점쳐진다. 해당 펀드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일부 투자자에게 실질적 회수율이 원금 대비 25%에 그칠 전망으로 언급한다고 전해졌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밝힌 손절 매각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현지 오피스 시장의 불황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부동산의 단일 임차인인 네슬레가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체제를 도입했다”며 “네슬레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내 오피스 수요가 줄자 임대 면적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바르셀로나 전체적으로 보면 작년 말 기준 공실 오피스 면적이 약 83만㎡에 달하는데, 오피스 수요 감소로 실제 새로 임대가 되는 면적은 29만㎡에 불과하다는 게 이지스의 설명이다.

둘째는 리파이낸싱의 좌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지 금융사들이 오피스에 대해 매우 신중한 접근을 고수한 탓에 제한적인 범위 내의 대출만을 취급하고 있다”며 “본 부동산에 대해 글로벌 전문기관을 통해 현지 금융사들의 대출 가능성을 파악했으나 임대차 리스크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회신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설령 리파이낸싱을 해 줄 금융사를 찾더라도, 최근 자산 가치 하락에 따라 본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남은 대출금(5030만유로)에 크게 못 미친다”며 “리파이낸싱에 성공하더라도 오피스 시장 상황상 회수율이 개선되는 것을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셋째는 임차인의 리모델링 요구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네슬레는 계약 연장의 조건으로 리모델링을 요구해 왔고 이를 위해 약 1600만유로가 필요하다”며 “네슬레가 아닌 대체 임차인을 유치하는 것도 상당한 자금이 든다”고 설명했다.

한편 선순위 대주인 독일계 은행 Postbank가 담보권을 실행할 경우, 투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매각 판단에 고려됐다고 이지스 측은 밝혔다. 이는 작년 12월 ‘한국투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벨기에 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