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22-1]
아버지의 못다 이룬 신선주의 꿈 펼친 박준미 명인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술 중 ‘신선주’로 이름 붙여진 술은 ‘청주신선주’가 유일하다. 신선주는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각종 약재를 넣어 빚은 술에 주로 붙여졌다. 도교풍의 이름이 붙은 것은 ‘불로장생’의 가치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 9일 박준미 식품명인의 ‘청주신선주’ 체험행사가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있었다. 이날 행사는 청주신선주의 역사에 관한 박준미 명인(식품명인 88호)의 설명과 증류 시연, 그리고 이양주 술빚기 체험으로 이어졌다.
청주신선주는 박 명인의 고조부(박래순)가 남긴 《현암시문합집(玄庵詩文合集)》에 기록돼 있는 집안의 술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신선주는 능히 백발을 검은 머리로 변하게 하고 노인을 젊은이로 만들어 해가 갈수록 수명을 더하도록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역사도 오래돼 “신라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선봉 아래 후운정을 짓고 신선주를 마셨던 일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선비들이 신선주를 마신 후, 칭찬이 자자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선봉은 속리산의 봉우리 중 하나다.
이렇게 기원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는 신선주가 박준미 명인의 집안과 연결된 것은 6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명인의 19대조인 박숭탕이 충청 도사(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는 것. 봉제사접빈객의 기본은 술이다. 따라서 손님이 많은 집은 더 자주 술을 빚어야 했다. 이때 빚은 술이 신선주였다고 박 명인은 말한다.
이렇게 시작한 신선주는 집안의 가양주로 이어져 왔고, 박 명인의 아버지 박남희 씨를 통해 세상에 소개되었다. 신선주는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현재의 무형유산)로 지정됐다.
박남희 씨는 가문의 술을 상업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며 양조장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 꿈은 채 이루지 못하고 병을 얻게 된다.
이때까지도 박 명인은 건축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향한 열정에 감복한 박 명인은 결국 이수자의 길을 걸으며 양조인의 인생을 선택한다.
박준미 명인은 2018년 무형유산 전수자 자격을 취득한 후 주조면허를 내고 본격적으로 신선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20여 년 만에 아버지의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게다가 2020년에는 신선주 약주로 식품명인 호칭을 얻는 영광까지 누리게 된다.
현재 박준미 명인이 빚고 있는 술은 모두 5종이다.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신선주(증류식 소주 42%) 이외에 신선주 약주와 탁주를 만들어왔다. 지난해부터는 알코올 도수를 낮춰 범용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든 ‘신의 한 술(22%)’을 생산하고 있으며, 알코올 도수를 7%로 낮춘 ‘신선막걸리’도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이 술을 만들기 위한 누룩은 박 명인이 직접 농사지은 앉은뱅이밀로 만든다. 다음 달부터 수확해 장마 이전에 누룩을 만들어 1년 동안 사용한다고 박 명인은 말한다.
박 명인의 청주신선주는 3양주로 만든다. 무형유산인 신선주 소주와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품목인 약주 모두 마찬가지다. 밑술은 멥쌀, 그리고 두 번의 덧술은 찹쌀을 쓴다. 약재는 표에서 정리한 것처럼 생지황 숙지황 등 12종의 약재를 법제해서 사용하고 있다. 다만 육계는 국내산이 나오지 않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약재가 들어가는 술은 술만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부재료 손질법이다. 법제를 제대로 해야 약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재료는 모두 첫 번째 덧술 과정에 넣으며 감국과 지골피는 탕수, 나머지 약재는 파쇄해서 술덧에 혼합한다. 이렇게 빚은 술은 100일 동안 발효되어 약주가 되고, 이 술을 증류해 3년 이상 숙성하면 신선주 소주가 된다. 현재 판매 중인 소주는 알코올 도수 42%이며 소줏고리와 동증류기에서 증류한 원액을 블렌딩해서 병입하고 있다. 박 명인은 아버지 박남희 옹이 30년 전에 내린 소주 원액을 알코올 도수 52%와 62% 버전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프리미엄 소주 시장을 겨냥한 선택이다.
박준미 명인 체험행사의 꽃은 이양주 빚기였다. 이양주는 두 번 담는 술이다. 먼저 밑술을 담고 술이 되면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한다. 이렇게 덧술을 하는 까닭은 맛을 위해서다. 단양주보다 이양주가 더 안정적으로 술이 빚어져 맛의 균형감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리 밑술을 준비해야 하므로 체험행사에서는 주로 단양주를 빚는다.
박 명인은 3일 전에 먼저 빚어둔 밑술을 청주에서부터 가져와 체험객에게 나눠주고 현장에서 이양주를 빚는 방식으로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술덧을 치대는 방법과 술의 발효 관리법 등을 체험객에게 주로 설명했다. 체험이 끝난 뒤에는 신선주 소주와 약주, 그리고 탁주를 시음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