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23-2]
“손님 다과상에 오른 양반가의 김치를 아시나요”

김치이면서 동치미처럼 보인다고 해서 ‘반지’ 김치 다과상에 올려진 나주 지역 종가의 대표 내림 음식

2025-06-15     김승호 편집위원
오숙자 식품명인의 딸인 윤다슬 전수자가 ‘반지 김치’를 시연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지 김치는 전남 나주의 대표적인 반가의 내림 음식이다.

<편집자주> 반가의 김치는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손도 많이 간다. 상에 썰어서 나오는 모양까지 신경을 쓰며 김칫소를 넣어야 하고, 각각의 재료 특징을 살려서 순서에 맞게 양념을 넣어야 한다. 심지어 채를 썰어서 넣어야 하는 경우, 향미가 강한 채소에 의해 김치 맛이 해치지 않게 하려고 가능한 한 얇게 채소를 다룬다. ‘접빈객’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정한 김치 식품명인은 모두 다섯 사람이다. 이 중 유정임 식품명인(포기김치)과 오숙자 식품명인(반지김치)의 체험 행사가 최근 서울 북촌에 있는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 진행됐다. 두 김치 모두 손이 많이 가는 김치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잊고 지나가는 김치이기도 하다. 명인의 손길에서 무형의 유산으로 남겨질 우리 김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김치이면서 동치미처럼 보이는 김치가 있다. 포기김치를 담듯 김치 양념을 만들지만, 흔한 고춧가루는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지푸라기로 잘 여민 포기김치가 김칫국물에 반쯤 잠겨 있지만, 이름은 물김치도 나박김치도 아니다. ‘반지 김치’다. 흔하게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하지만 전남 나주 지역의 종가에선 대표적인 내림 음식으로 꼭 챙겨서 만드는 김치 중 하나라고 한다.

지난 6월 5일 서울 북촌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오숙자 식품명인의 반지 김치 체험 행사가 있었다. 이날 반지 김치 체험은 오 명인의 딸인 윤다슬 전수자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반지 김치의 재료가 미리 손질돼 있었지만,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양념소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 2시간의 체험 시간이 빠듯했다. 김칫소에 들어가는 채소는 거의 0.2cm 너비로 얇게 채를 썰어야 했고, 길이도 3cm 정도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김칫소까지 깔끔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통 김치를 담글 때 다져서 사용하는 마늘과 생강처럼 향이 강한 채소도 예외 없이 채를 썰었다. 김칫국물의 맛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다.

반지 김치는 다른 김치와 세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먼저 김칫국물이다. 물을 넣지 않고, 소고기 양지 부분을 2~3시간 삶은 육수를 식혀서 국물로 넣고 있다. 김치와 고기 육수의 만남이 어색해 보이지만, 동물성 단백질은 채소로 만드는 김치의 풍미를 높여주는 한편 영양소까지 보충해 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양지 육수는 사골 육수에 비해 냄새가 적기 때문에 시원한 김칫국물 맛을 만들어 준다. 양지 육수는 이북식 김치에도 많이 사용되는 재료다.

동물성 재료는 양지 육수 외에 해산물도 넣고 있다. 낙지와 새우가 대표적이다. 대파와 쪽파의 파란 부분을 깔고 쪄낸 뒤 포를 뜨듯 잘라 채소를 손질한 크기로 다듬어 사용한다.

두 번째는 전라도 김치에 많이 사용하는 멸치젓이나 갈치젓 등의 젓갈류가 들어가지 않는다. 젓갈을 넣고 장기 보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곰삭은 맛이 반지 김치에선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넣는 젓갈이 새우젓인데, 그 젓갈마저 겨울에 나는 ‘동백하젓’이다. 이유는 다른 새우젓에 비해 짠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백하젓의 건더기는 다져서 사용하고 젓갈 국물은 김칫소의 양념으로 들어간다.

세 번째는 찹쌀풀을 사용하지 않는다. 김치를 담글 때 보통은 찹쌀이나 밀가루풀을 넣는다. 젖산 발효를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반지 김치는 전분을 넣어 따로 젖산 발효를 유도하지 않는다. 발효를 위해 넣는 재료는 고작 반지 김치를 담글 때 모양을 잡았던 지푸라기가 전부다. 짚에 있는 미생물이 김치가 숙성되는 동안 자연스럽게 발효를 일으켜 준다는 것이 윤 전수자의 설명이다.

반지 김치 만드는 법은 앞서 설명처럼 모든 재료를 채로 썰어 준비하고 이를 순서에 따라 버무려 주면 된다. 우선 무채에 실고추를 넣는다. 반지 김치는 고춧가루 대신 색을 내기 위해 실고추를 사용한다. 여기에 동백하젓의 국물을 넣고 생강과 양지고기를 넣는다. 모든 재료를 얇게 썰었기 때문에 양념을 버무리는 과정은 설렁설렁 털어내듯 섞어 준다. 낙지와 새우, 파는 마지막에 넣고 섞어 주면 된다. 버무려진 양념소는 절인 배추와 무에 켜켜이 넣어 준다. 배추의 경우 큰 잎을 3구역으로 나눠 양념소를 올려 준다. 뭉쳐 있으면 썰었을 때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윤 전수자는 말한다. 양념소를 다 넣었으면 마지막 부분의 배춧잎으로 감싸주고 지푸라기로 단정하게 묶어 주면 된다. 김칫소가 빠져 나오지 않도록 단속을 하는 것이다. 무는 오이소박이처럼 양념소를 넣고 배춧잎으로 말아 준다. 이렇게 완성된 배추와 무는 하루를 상온에서 숙성한 뒤 다음 날 미리 준비해 둔 양지 육수를 넣고 2~3일 숙성하면 된다.

반지 김치 윤다슬 전수자가 행사에 참여한 체험객에게 김칫소 넣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반지 김치는 보통의 김치와 차이점도 많고 만드는 과정도 색다르다. 그리고 쓰임새도 일반 김치와 다르다. 윤다슬 전수자는 오숙자 명인이 반지 김치를 손님맞이용 다과상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다과를 즐기면서 간이 세지 않은 국물 있는 김치를 곁들였다는 것이다. 마치 경북 안동의 설월당 종가의 가보로 내려오는 《수운잡방》의 꿩김치를 연상시키는 설명이다. 설월당 종가의 김도은 종부는 집안의 술인 ‘진맥소주’의 안주로 ‘꿩김치’를 주안상에 올린다고 말한다. 꿩김치는 반지 김치처럼 꿩 육수를 넣어 국물을 만든 김치다.

‘반지’의 어원을 추적하면 김치의 고어인 ‘디히’와 맞닿는다. ‘지’는 디히에서 온 말이고, ‘반’는 양반가를 뜻하거나 배추김치와 동치미의 중간을 뜻하는 ‘절반’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