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24-1]
3대째 차 농사짓는 홍순창 명인, 죽로차 소개

대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찻잎 덖어 만든 녹차

2025-06-28     김승호 편집위원
홍순창 식품명인과 윤건희 전수자가 죽로차 설명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 명인의 죽로차는 경남 하동에서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차이다. (사진=김승호 편집위원)

<편집자주>  문화적 원형을 유지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새로운 사조나 문물이 들어오면 기존 문화에 접목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음식 문화는 더 그렇다. 새로운 식재료는 기존 음식 맛의 변형을 의미했다. 바뀐 맛이 원형보다 좋으면 기존 것은 바로 대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형의 맛이 대체 불가능하면 정체성은 계속 유지된다. 게다가 문화적 교류가 힘든 곳이라면 원형의 유지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지난 6월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는 홍순창 식품명인의 죽로차와 강경순 식품명인의 오메기술 체험 행사가 있었다. 우리 차와 술의 원형을 간직한 품목이다. 오늘은 식품명인이 풀어내는 ‘원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죽로차, 대나무의 이슬을 받고 자란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뜻한다. 대나무의 이슬을 받는다는 것은 대나무가 자라는 야생의 공간에서 차나무가 공존하며 성장하는 환경을 뜻한다. 사람 손에 의해 재배치된 재배종 차나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자란 차나무에서 수확한 차가 바로 죽로차다.

지리산 화개계곡은 다랭이논에도 차나무가 있을 정도로 녹차로 유명한 곳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하동은 운무가 자주 나타나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게다가 대나무와 같이 자란 차나무는 더욱 좋은 찻잎을 생산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차나무는 다른 나무와 같이 자라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대나무와 같이 자랄 수 있어요. 대나무의 뿌리는 옆으로 퍼지는데 차나무는 수직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경남 하동의 홍순창 식품명인(지정품목 죽로차)의 말이다. 지난 6월 14일 서울 북촌에 있는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홍순창 명인의 죽로차 체험이 있었다. 차를 덖고 말리는 과정을 체험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2시간 정도 예정된 식품명인 체험은 지정품목에 관한 설명과 시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홍순창 식품명인이 죽로차 시음 방법을 체험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승호 편집위원)

그런데 왜 차나무와 대나무가 공존하는 환경에서 자란 죽로차가 좋다는 것일까. 홍순창 명인은 줄곧 죽로차의 차밭 환경을 강조했다. 답은 명쾌했다. 대나무 그늘 밑에서 자란 차나무가 음용하기 좋은 찻잎을 만든다는 것이다. 대나무가 햇빛 가림막이 되어 주기 때문에 그만큼 직접 햇빝을 받는 시간이 다른 차밭보다 적어진다. 그러면 녹차의 맛이 쓰지 않고 달게 나온다는 것.

차나무는 ‘카테킨’이라는 황산화물질을 갖고 있는데, 이 물질이 많으면 차 맛이 쓰고 떫다고 한다. 따라서 카테킨 물질을 적게 생성하도록 차나무를 재배하는 것이 차농사의 관건이라고 한다. 일본의 경우 차밭에 가림막(그늘막)을 쳐서 일조량을 줄인 곳이 있다는데, 대나무 차밭은 자연 그늘막이 형성돼 최고의 찻잎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홍순창 명인은 화개계곡이 예전부터 대나무와 차나무가 많았다고 말한다.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화전민들이 대나무를 많이 키웠고, 재야의 삶을 선택해 지리산으로 들어온 사람 중에 차나무를 가꾼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대나무가 주요 생필품의 재료로 쓰였던 시절에는 대나무밭을 가꿀 정도였으므로 자연스레 대밭과 차밭이 공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쓴맛은 적고 단맛이 올라오는 데다 필수아미노산까지 풍부한 차가 죽로차라고 한다. 이처럼 좋은 녹차를 만들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녹차를 멀리하고 커피를 찾는다고 홍 명인은 말한다. 편리성과 각성효과라는 장점을 선택한 결과라는 것. 하지만 친환경적인 재배환경은 물론 염증 예방효과 등의 약리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녹차 음용이 현대인에게 더 바람직하다고 홍 명인은 말한다. 심지어 커피와 경쟁하기 위해 녹차 장인들이 정성껏 차를 만들어 대한민국 녹차의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도 강조했다.

홍 명인의 죽로차 설명 뒤에는 전수자인 윤건희 씨의 진행으로 죽로차 시음회가 있었다. 윤 전수자는 차를 마실 때 먼저 향을 맡고, 입술을 적실 정도로 음용해 차 맛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말한다. 차의 타닌도 있지만, 단맛이 있는 녹차 맛이 느껴질 것이라며, 이 맛이 죽로차의 맛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뜨거운 물을 식혀서 차를 우리는데, 다구에 따르면서 적정 온도로 낮아지므로 굳이 찻물을 식혀가며 우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 우린 차는 음용한 뒤 다시 뜨거운 물을 넣어 우리는 형태로 찻잎을 다룰 것을 추천했다.

죽로차는 앞서 홍 명인의 말처럼 카테킨 성분이 적게 들어 있어 차 맛에서 단맛이 먼저 감돌았다. 감칠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고, 맛도 풍부했다. 녹차도 비교 시음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별화된 맛을 가진 차였다. 

홍 명인은 아버지 홍소술 명인에 이어 지난 2023년 연말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3대째 이어 차 농사를 지으며 경남 하동에서 ‘화개제다’를 운영하고 있다. 홍 명인이 만든 차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죽로차 이외에 발효차와 우전, 특우전 등의 이른 시기에 따낸 차도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