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24-2]
강경순 명인, 서울 북촌서 제주술 문화 소개
차조 오메기떡 빚고, 보리누룩 넣어 술 빚어
<편집자주> 문화적 원형을 유지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새로운 사조나 문물이 들어오면 기존 문화에 접목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음식 문화는 더 그렇다. 새로운 식재료는 기존 음식 맛의 변형을 의미했다. 바뀐 맛이 원형보다 좋으면 기존 것은 바로 대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형의 맛이 대체 불가능하면 정체성은 계속 유지된다. 게다가 문화적 교류가 힘든 곳이라면 원형의 유지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지난 6월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는 홍순창 식품명인의 죽로차와 강경순 식품명인의 오메기술 체험 행사가 있었다. 우리 차와 술의 원형을 간직한 품목이다. 오늘은 식품명인이 풀어내는 ‘원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도의 술은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두 종류다. 모두 차조로 만든 술이다. 오메기술은 막걸리이고, 이 술을 소줏고리로 내린 술이 고소리 술이다. 논이 부족했던 제주도는 쌀로 술을 빚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차조가 술의 주재료로 쓰였다. 지금이야 육지 쌀을 가져다 술을 빚을 수 있었지만, 뱃길로 오가야 했던 시절에는 차조도 귀해서 술은 아무나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농촌은 쉬는 날입니다. 이런 날이면 어머니(김을중, 1925년생)는 차조로 떡을 만들곤 했습니다. 요즘은 팥고물을 묻혀 먹지만, 그땐 고물 없이 먹었던 떡입니다. 오메기떡입니다. 그런데 왜 ‘오메기’인 줄 아시나요.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메기’를 흔히 차조의 제주도 사투리로 알고 있지만, ‘오목’한 모습을 뜻한 형용사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오메기술은 주재료의 형상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 6월 20일 강경순 식품명인의 오메기술 체험 행사가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있었다. 이날 강 명인은 오메기술의 기원을 설명했다. 물도 부족했고, 농사지을 좋은 땅도 많지 않았던 제주도에선 쌀 구경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음식 문화의 근간이 되었던 곡물은 차조였다. 차조가 주식이었고 이를 가루 내어 술과 떡을 만들어 먹었다.
체험행사는 강 명인의 오메기술 제조 시연 후 체험객들의 오메기술 만들기로 이어졌다.
오메기술을 만드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차조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만든다. 익반죽을 둥글게 만든 뒤 구멍떡을 만들 거나 오목한 떡모양으로 만들어 끓는 물에 넣어 익힌다. 다 익은 오메기떡은 건져내 주걱이나 봉으로 넓게 펼쳐 식힌다. 이때 손을 빨리해야 한다. 뭉쳐지지 않게 완전히 풀어야 술이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오메기떡을 다 풀었다면, 여기에 보리누룩을 넣는다. 오메기떡과 누룩을 치대기 전에 구멍떡 삶은 물을 조금 섞어준다. 제대로 풀어지도록 양손을 넣고 충분히 치댄 뒤 발효통에 넣으면 만드는 과정은 끝난다.
필자도 직접 강경순 명인의 도움을 받아 가며 오메기술을 빚었다. 차조떡을 삶은 물까지 챙겨가며 술을 치대도록 유도하고, 떡이 마르면 안 된다며 체험객 테이블을 오가며 살뜰히 챙기는 강경순 명인의 얼굴을 땀범벅이었다.
오메기술을 만드는데 들어간 누룩은 보리누룩이다. 육지에서 막걸리를 만들 때 쓰는 누룩은 밀누룩이다. 제주도는 쌀만큼이나 밀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보리로 누룩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메기술은 제주도의 식문화를 완벽하게 담고 있는 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대한 맛을 내기 위해 차조를 선택했고, 당화력은 떨어지지만, 보리로 만든 누룩을 넣어 술을 만든 것은 제주도만의 문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라남도 해안의 섬에서도 보리누룩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강경순 명인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밀누룩을 쓰지 않고 아직도 보리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고 있다. 어머니 김을정 여사의 방법을 이어야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만든 술은 섭씨 25℃의 공간에서 하루에 한 번 정도 저어주면서 1주일 동안 발효시키면 된다. 처음 2~3일은 누룩에 있는 곰팡이들이 차조의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는 일과 알코올을 만들 효모가 개체수를 늘리게 된다. 이때는 발효통에 공기가 약간 들어가도록 완전히 막지 않는다. 그리고 나머지 4일 정도는 본격적인 발효가 이뤄지므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만 두고 발효통을 밀폐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발효하기 위해선 발효통에 에어락 장치를 설치하면 된다.
술이 다 되면 노란색의 청주가 뜨고,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강경순 명인은 다 된 술을 체에 내려 누룩 지게미를 걸러 냉장 보관할 것을 권장한다. 바로 마셔도 좋지만, 오랫동안 저온 공간에서 숙성되면 감칠맛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오메기술은 상업양조를 하고 있지 않다.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가서 구매하거나 전화로 주문할 수는 있지만, 대량 구매는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강 명인은 오메기술에 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만큼 제대로 술을 생산하기 위해 아들(전수자)인 김지영 씨와 함께 성읍마을 한쪽에 양조장을 준비하고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