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25-2]
신세경 명인의 새우젓, 어머니 향한 사모곡
광천 토굴 숙성 새우젓, 타 제품보다 아미노산 높아 4대째 이어온 가업…토굴은 국가어업유산으로 지정
식품명인은 전통 식품의 활성화와 계승 발전이 주된 목적이다. 해당 분야에 오래 종사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 중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각각 선정하고 있다. 해당 영역에서 장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영광스러운 호칭이라고 볼 수 있다. 해양수산부에서 지정한 수산식품명인은 현재까지 모두 14명이다. 그중 두 사람의 식품명인을 해양수산부에서 후원한 코리아씨푸드쇼에서 만났다.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이 주관한 수산식품명인 체험행사에서 두 명인은 각자의 지정품목인 참게장과 새우젓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참게장은 희소성과 귀한 맛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새우젓은 흔하지만 독특한 방법으로 만든 명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신선한 수산식품명인의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편집자주>
어머니를 향한 한편의 사모곡이다.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 앞에서 모든 자식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새롭게 수산식품명인(제13호)으로 지정된 신세경 씨의 이야기다. “저보다 어머니가 명예를 받으셔야 하는데, 나이가 연로하셔서 어머니 대신 제가 명인이 되었다”고 인사말을 꺼낸 신 명인은 어머니 이옥수(89)씨를 행사장 앞으로 모셨다. 직접 어머니와 함께 시연하기 위해서였다.
신 명인의 지정 품목은 ‘새우젓’이다. 4대째 새우젓을 만들고 왔다. 신세경 명인의 증조부는 보령에서 중선배를 운영하며 새우젓을 담갔다고 한다. 중선배는 중간 크기의 배를 뜻하는 사투리다. 조선 시대 이래 어촌에서 고기잡이에 가장 많이 썼던 배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선배가 있다는 말은 농촌으로 치면 지주였다는 말과 같다. 보령에서 새우젓을 만들던 신 명인의 집안이 광천으로 이주해 온 것은 1960년대, 아버지 신진옥씨의 선택이었다. 새우젓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광천에 와서 첫 번째 한 일은 저장과 숙성을 위한 토굴 마련이다. 계절이 바뀐 뒤 판매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신진옥 씨의 새우젓 사업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다. 토굴에 대량의 새우젓을 재워두면 바로 새우젓 풍년이 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결국 가계는 어머니의 손에 의해 유지됐다. 어머니는 새우젓을 큰 광주리에 담아 하루에 십수km를 걸으며 5형제를 키우고 새우젓 사업도 일으켰다. 그래서 신 명인은 고생하며 새우젓을 만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식품명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한다. 새우젓을 담는 항아리는 장이나 술을 담는 항아리와 모양이 다르다. 마치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처럼 길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바닥이 약간 평평하다는 점이다. 뾰족한 모양새를 갖춘 것은 땅에 묻기 위해서다. 이름은 ‘젓독’. 충청도 사투리로 ‘젓조쟁이’라고도 한다.
신세경 명인이 담근 새우젓의 특징은 앞서 말했듯 광천 토굴에서 숙성한다는 점이다. 명인 소유의 토굴은 연중 14~16도의 온도와 일정한 습도(85%)가 유지된다. 숙성을 위한 천혜의 조건이다.
여기에 집안에서 내려온 염도 맞추기 비법이 더해진다. 골마지 방지법이다. 염도가 맞지 않으면 새우젓에 하얗게 곰팡이가 슬게 된다. 신 명인은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새우젓을 넣은 ‘젓독’에 염장새우를 90% 정도 채운 뒤 그 위에 천일염을 담은 모시주머니를 올려 준다. 새우젓의 평균 염도가 낮으면 주머니의 소금이 녹아 젓독에 퍼지게 되고, 충분하면 주머니의 소금이 녹지 않고 일정 염도를 유지하게 된다. 신 명인은 이 작업을 할 때 어머니 이옥수씨와 함께한다. 어머니의 손맛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별도의 작업을 통해 염도를 조절하는 것은 포구에 들어오는 새우젓의 염도가 일정하지 않아서다. 새우는 상하기 쉬워서 잡자마자 배에서 미리 염장하는데 이때 일정하게 소금 처리가 안 된다. 따라서 새우젓 숙성과정에서 염도를 맞추는 것이다.
신 명인의 새우젓은 광천 토굴새우젓의 시초다. 토굴은 현재 국가어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가 얼마나 길면 들어가 길을 헤맬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긴 토굴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신진옥씨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매년 생산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매년 토굴 확장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신 명인의 새우젓은 모두 이곳에 저장하고 있다.
토굴에서 숙성된 새우젓은 아미노산 함유량이 일반 새우젓보다 높다. 특히 5~6개월이 되었을 때 가장 높다고 신 명인은 말한다. 이날 새우젓 체험행사는 신 명인과 이옥수씨의 새우젓 저장 시연을 마친 뒤 신 명인의 새우젓을 이용하여 호박볶음 만들기가 진행되었다. 새우젓과 파프리카 애호박, 마늘, 생강, 고추, 대파 등을 넣고 만드는 대표적인 여름 밥반찬이다. 차별점은 쌀뜨물을 미리 받아두었다가 육수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