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생돋] 현실의 벽 넘지 못한 은행 ‘가상점포’
[은행생활돋보기 22] '메타버스' 열풍 타고 실험만 3년 실수요 못 찾고 사실상 폐점 수순
‘메타버스’ 열풍이 한창이던 2021년, 국내 주요 은행들이 실험적으로 도입한 가상점포가 잇따라 폐점 수순을 밟고 있다. MZ세대 소통 창구이자 오프라인 점포 축소의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서비스 확장 제약과 실수요 부재라는 현실적인 장벽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메타버스는 디지털 가상세계와 인간의 감각이 연결되는 ‘가상융합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현실을 모방한 온라인 공간에서 아바타(avatar)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비대면 전환이 가속화되며 시장이 급속히 커지자 국내 은행권도 관련 기업과 협업하거나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앞다퉈 진출에 나섰다.
은행별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은 메타버스 플랫폼에 ‘KB금융타운’을 열어 VR브랜치 상담소를 운영했고 하나은행은 신입 행원 연수공간인 ‘하나글로벌캠퍼스’를, 우리은행은 ‘소상공인 종합지원센터’를 론칭했다.
또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각각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 ‘시나몬’과 ‘NH비전타운’을 구축해 가상의 재화를 활용해 모의 투자, 보험 가입, 자동차 구매 등 가상 금융 활동 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들 은행 가상점포는 2021년 시범 도입을 시작으로 2022~2023년까지 활용 범위를 넓혀나갔으나, 3년여가 지난 현재 정식 서비스로는 전환되지 못했다. 대부분 운영을 중단했고 일부 공간만 형식적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 가상점포가 상용화되지 못한 데는 메타버스라는 기술 플랫폼과 금융업의 본질적 부조화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접근성과 편의성 측면에서 한계가 컸다. 메타버스 공간에 접속하려면 별도 애플리케이션 설치나 로그인, 아바타 생성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사용자 경험이 정교하게 최적화된 모바일뱅킹 앱에 익숙한 고객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기술적 제약도 발목을 잡았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대부분 외부 솔루션에 기반한 탓에 운영 주체인 은행이 보안이나 기능 업데이트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웠고, 접속 지연·그래픽 오류·보안 우려 등도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여기에 금융규제의 벽이 본질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이뤄지는 상담이나 상품 안내가 ‘영업행위’로 간주될 수 있어, 현행 금융감독 규제나 전자금융거래법과 충돌할 소지가 있었다. 실제로 일부 은행은 메타버스 내 금융상품 판매 계획을 세웠다가, 내부 준법검토 과정에서 법적 리스크 판단에 따라 기능 구현을 보류한 사례도 있었다.
또 메타버스의 몰입성과 확장성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 보관이나 게임 등 비금융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려는 시도가 은행이 고유 업무(예금·대출 등)와 부수적 성격의 비금융 업무를 넘나들며 산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해석돼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체험용 콘텐츠 수준에 머문 은행 가상점포는 이용자 이탈을 막지 못했다. 내부적으로도 메타버스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초기 전담 조직은 해체됐고 담당 인력 역시 대부분 타 부서로 전환 배치된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때 메타버스 붐을 타고 은행 가상점포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기술의 완성도나 규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엔 한계가 있었다”며 “현재는 AI 기반 상담이나 내부 자동화 등,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기술에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