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생돋] 은행 영업점 통폐합, ‘사람’ 보다 ‘돈’ 따랐다

[은행생활돋보기 23] 인구수 비슷한데…강남 255개 vs 강서 59개 “자산 불평등, 금융 접근성 불평등으로 전이”

2025-08-20     안소윤 기자

비대면 거래 확산에 따른 내방객 감소를 이유로 은행들이 영업점 통폐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용 효율화의 논리를 앞세우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산가 밀집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 지점 수 격차를 키워 금융 접근성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 통계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국민·기업·농협·신한·우리·하나 등 6개 시중은행 영업점은 지난 2020년 1713개에서 지난해말 1445개로 4년간 268개(15.64%) 줄었다.

자치구별로 보면 서울 자치구 중 시중은행 영업점 수가 가장 많은 강남구의 경우 지난 2020년 255개에서 지난해 227개로 10.98% 줄었다. 같은 기간 관악구는 39개에서 31개로 20.51% 감소했고, 노원구(48개→43개)와 강서구(59개→52개)로 각각 10.41%, 11.86% 축소됐다.

올해 4월 기준 강남구의 인구수는 55만7115명이고, 노원구는 54만7000명, 강서구는 54만5000명, 관악구는 498000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규모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따라 은행 영업점 통폐합의 강도가 달랐던 셈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영업점 수가 유지된 곳은 강남구와 서초구, 중구, 영등포구, 송파구 등이다. 공통점은 부동산·자산가 밀집도가 높다는 점이다.

KB경영연구소가 발간한 ‘한국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부자의 45.5%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전년보다 0.5%포인트 늘어난 수치로, 지난 1년간 강남 3구에서만 1800명의 부자가 새로 늘었다.

전통적 부촌 지역에 자산가가 계속 몰리면서, 은행 역시 고액 자산 관리 수요를 따라 영업망을 사실상 ‘부자 동네’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비용 절감 논리 뒤엔 공공성 훼손


은행들은 영업점 축소 명분으로 운영 효율화를 내세운다. 하지만 영업점 축소 지역이 인구 수요와 비례하지 않고, 자산가 밀집도를 따라가는 건 은행 본연의 공공성보다 이익 논리를 우선시한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좀 더 적극적인 구조적 개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의 영업점 통폐합에 따른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영업점 통폐합 사전 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 통폐합에는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금융 취약계층의 접근성 보완을 위해 우체국 창구를 대체 채널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다만 이런 대책 대부분은 ‘없어지는 지점의 불편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정작 은행들이 일부 지역을 중점으로 한 영업망을 유지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점은 인구 수요를 배제한 채 통폐합하는 행태에 대한 규제나 관리 장치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령층과 소상공인 등은 여전히 대면 창구 의존도가 높아 영업점 축소의 직접적인 피해를 본다”며 “자산가 지역을 우선하는 지점 운영은 은행 수익성에는 유리하지만, 금융 서비스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금융 소외를 심화시킨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당국 차원에서 지점 통폐합에 따른 불편을 줄이려는 보완책을 내놓고 있지만, 은행이 어떤 기준으로 점포를 줄이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족하다”며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지역별 불균형을 직접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