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험사 회장님들, 배당은 못 드립니다

2025-09-08     박영준 기자

“회장님, 올해 보험영업을 잘해서 순이익이 사상 최대입니다. 그런데 배당은 못 드리고, 증자 해주셔야겠습니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이 현재 속도로 쌓였다간 이런 상황이 매년 반복될 거라는 보험사 경영진의 토로다. 증자가 싫은 대주주에게 해줄 말은 보험영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뿐이다. 조만간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은 이익잉여금 한도를 돌파할 기세다. 지금도 턱 끝까지 찬 보험사는 다른 법정준비금조차 쌓지 못하고 있다. 

이익잉여금을 넘어선 해약환급금준비금은 그만큼 기본자본을 보완자본으로 만든다. 올 상반기 증가액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후 가용자본의 보완자본화는 가속화된다. 이때부턴 지급여력(K-ICS, 킥스)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기본자본킥스비율은 마이너스(-)인 보험사가 속출할 수 있다.

기본자본을 회복하려 증자를 결정한들 사외유출이 금지된 적립금이라 배당은 기약이 없다. 외부 자본 차입 역시 불가능하다. 기본자본으로 인정받는 신종자본증권은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만 이자 지급이 가능한 까닭이다.

보험사가 망가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아무리 자본을 넣어도 언제 메워질지 모르는 부채에 시달리는 회사를 누가 사겠는가. 만약에라도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가 존속하지 못하면 그간 손금산입된 적립액은 고스란히 세금 폭탄으로 돌아온다. 매수자에겐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다.

청산 절차를 거친 MG손해보험에 대량의 계약자 이탈이 발생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는 계약자의 보험계약을 변동 없이 이전했고, 공적자금도 투입했다. 이제 시장은 망하는 보험사는 있어도 보험계약은 바뀌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런 메시지를 줘놓고, 보험사는 해지 때 모두에게 줄 환급금은 무조건 쌓으라 압박한다. 계약자 보호를 위한 정책에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정작 2개 분기 연속 자본잠식 상태가 된 KDB생명에는 금융감독원이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다. 시가 평가상 자본잠식일 뿐 강제 경영개선명령을 위해선 원가 기준의 자본잠식이어야 한다. 이렇게 원가와 시가 회계가 혼재된 감독체계에서는 규제 대상인 보험사도 혼란스럽다.

기본자본킥스비율 규제 도입을 앞둔 지금이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를 손볼 골든 타임이다. 기본자본은 마이너스인데 킥스비율은 문제없다면 규제가 정상 작동할 리 없다. 재무회계(IFRS17), 감독회계(SAP), 건전성회계(PAP) 모두 시가 평가로 맞춰진 상황에서 원가 부채를 지키는 것만이 계약자보호 방안이라는 건 고집에 가깝다.

실현 가능한 규제를 통해 대주주의 계속적 증자를 유도하고, 판매한 계약에 직접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엄격한 기본자본의 요건과 규제 비율이 요구된다. 시점에 따라 부채 평가액이 달라져도 어느 상황에서나 변치 않는 ‘기본자본(Tier1)’을 충분히 가졌는지 따지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