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대한금융포럼] 스테이블코인 제도 정비 : 서두르되 단단하게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최근 스테이블코인이 뜨거운 주제로 부상했다. 올 1분기 거래 규모만 57조원에 이를 정도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급성장했고, 주요국이 제도 정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논의의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 과정이 빠르다고 해서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워낙에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서두르되, 단단하게’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은 여러 유형이 있지만, 그중 통화준거형이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사실상의 ‘통화’ 역할을 한다. 비트코인이 상징적 존재라 하더라도 변동성이 지나쳐 결제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
통화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과 전통 통화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며 이 때문에 금융안정, 이용자 보호, 외환·결제 규제 등 다양한 정책 과제를 동반한다. 최근 각국이 일반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을 구분해 별도의 규율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현재 논의의 핵심은 국내 발행의 허용 여부다. 지난 2017년 이후 국내 발행이 금지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모든 가상자산 발행은 역외에서 이뤄져 왔다. 따라서 국내 발행 허용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발행인은 무이자 부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국채 등 이자 수익 자산으로 운용하며 이익을 거두는데, 이는 중앙은행의 주조차익과 유사한 구조다. 수익성 측면에서 대단히 매력적이니 시장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기회가 정책적 균형감각을 흐려서는 곤란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송금이나 온라인 거래 혁신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실제 수요는 달러 기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입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식의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국내외 스테이블코인 유통을 어떻게 규율하고 원칙을 세울 것인가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규제 수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그러나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설계해야 한다.
우선 많은 전문가는 발행자격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투자자산이 아니라 통화에 준하는 지급결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에, 발행 주체가 안정적 사업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신뢰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상법상 회사 형태 요건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배구조, 내부통제, 경영진의 적격성 등 실질적 요건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해외에서도 유럽연합(EU)의 MiCA는 발행인을 신용기관 또는 전자화폐기관으로 제한하고, 일본은 은행·신탁업자·자금이동업자에 한해 발행을 허용한다. 미국의 GENIUS Act는 발행 주체를 폭넓게 인정하되 금융감독기관의 엄격한 규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나아가 전통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금융회사의 직접 발행보다 별도 자회사를 통한 참여를 유도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자본요건도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 예정 사업 규모에 걸맞은 자본 확충이 필요하며, 사업이 확장될수록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EU는 최소 35만 유로와 발행액의 2% 중 큰 금액을 자본으로 유지하도록 요구하며, 미국과 일본도 사업계획 수행에 충분한 자본 확보를 전제한다.
아울러 준비자산 운용의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발행 대가로 받은 자금은 환급 요구에 대응할 준비금 성격을 지니므로, 고유동성·고안전성 자산으로 관리돼야 한다. 대량 환급 사태(coin-run)가 발생하더라도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나 예금보험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구불예금이나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해야 하며, 발행인의 도산 위험으로부터 절연되도록 신탁 관리 등의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편 외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규제 정비도 시급하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거래 규모가 이미 5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이미 상당한 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외화 스테이블코인 거래는 외환당국 신고나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국내 매입과 역외 이전이 가능한 만큼, 자본 유출 통로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외국환거래법상 대외지급수단에 외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해 거래 내역 및 전송에 대한 보고·신고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신고를 회피한 대규모 거래에 대해서는 불법 자금 거래 여부를 집중 조사함으로써 편법적 자본 유출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자금세탁방지(AML/CFT) 측면에서 엄정한 법 집행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콜드월렛이나 개인지갑(P2P)을 통한 역외 이전은 추적이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므로, 국내 유통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준비금의 국내 보관 의무를 부과해 이용자 보호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EU의 MiCA(2024년 6월 시행)와 미국의 GENIUS Act(2025년 7월 제정)는 모두 역내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을 역내 금융기관을 통해 관리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환급능력에 문제가 생길 때 국내 이용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자본 유출을 통제하는 효과도 함께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분명 새로운 기회다. 그러나 동시에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입의 속도만이 아니라 제도화의 단단함이다. 공포가 아니라 원칙으로, 이익이 아니라 신뢰로 제도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를 열 수 있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