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대한금융포럼] 디지털 금융 대전환의 서막 : 스테이블코인과 한국의 선택
강민훈 NH투자증권 디지털(Digital) 사업부 상무
전 세계 금융시장은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더불어 블록체인 기술이 이끄는 '디지털 금융 혁명'의 중심에 서 있다. 이 흐름의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실물 자산의 가치에 연동되어 가격 변동을 최소화하는 디지털 화폐로, 전통 암호화폐가 가진 변동성 문제를 효과적으로 보완하며 실질적인 거래 및 결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2025년 8월 기준 약 2674억 달러에 달하며, 연간 수십조 달러의 이체를 처리하는 등 비자나 마스터카드와 같은 기존 글로벌 결제망의 거래 규모를 능가하고 있다. 이런 성장세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닌, 미래 금융 인프라의 핵심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이 진정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 중앙집중적 금융시스템에서 분산형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철학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 전통 금융이 제도와 기관을 통한 신뢰에 의존했다면,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은 합의 알고리즘과 코드에 기반한 신뢰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중개기관 계정 중심 구조에서 개인이 직접 자산을 관리하는 자기주권적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금융 거래와 자산 소유권에 대한 근본적 사고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자국 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와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GENIUS Act', EU의 'MiCA', 일본의 '개정자금결제법'이 대표적 사례로, 이들은 규제 친화적 혁신을 통해 블록체인의 개방성과 기존 금융 규제의 조화를 이루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역시 보다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준비금 요건 등 핵심 사안에 대해 체계적인 제도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통화 주권 보호와 금융 안정성 확보, 이용자 보호 강화 등 다양한 요소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다양한 시행착오와 제도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후발주자로서의 이점을 적기에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테라-루나 사태 등 국내외 여러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여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제도적 기반을 신속히 마련함으로써,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금융산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증권사 등 금융기관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토큰증권(STO) 결제 인프라 구축, 저비용 국경간 송금과 무역결제, 새로운 자산관리 서비스 개발 등 다양한 혁신 사업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정부와 금융권이 함께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모델' 구축에 본격 나서야 할 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앙집중적 금융환경에서 분산형 블록체인 환경으로의 전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구현을 넘어, 신뢰의 기반을 제도에서 코드로, 중개기관 의존에서 개인 주권으로, 통제된 안정성에서 개방적 혁신으로 전환하는 철학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바탕으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통해 발행·운용 기준과 감독 체계를 명확히 정립하되, 기존 제도적 신뢰와 새로운 기술적 신뢰가 조화를 이루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금융기관과 빅테크의 협력과 같은 신뢰 기반 발행 모델을 적극 도입하면서도, 개인의 자산 자기주권과 고객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또한 안전성과 혁신성의 균형을 고려한 합리적인 준비금 규제를 통해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면서도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당국과 민간이 긴밀히 협력하는 규제·혁신의 상설 논의체 구성도 이러한 철학적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우리의 일상과 금융시장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미래 디지털 금융 패러다임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의 과감한 결단과 금융업계의 창의적인 혁신이 결합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 '골든타임'을 잘 활용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금융 강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