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우리술 407] 우리는 술을 문화로 바라보고 있는가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로 보는 한 ‘K-술’은 없다 한국술 문제, 언제까지 뒷북 행정으로 대응하나

2025-10-04     김승호 편집위원
▲쌀이 부족해서 술을 빚지 못하고 있는 양조장이 발생했다. 지역특산주 면허로 술을 빚고 있는 미음넷증류소(경기 파주)와 케이알컴퍼니(강원 횡성)이다. 지역특산주 제도의 한계로 인해 해당 지자체나 인근 시군구에서 쌀을 구할 수 없으면 술을 생산할 수 없다. 사진은 양조과정에서 쌀을 가장 많이 사용한 증류주들이다. K-술 활성화를 통해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문화적 관점에서의 우리 술


우리 술 중 쌀 술은 ‘쌀, 누룩, 물’로 만든다.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곰팡이와 미생물로 곡물의 전분을 알코올로 발효시켜 마셔왔다. 여기서 미생물이 만든 에탄올은 분명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성 음료다. 그런데 이 술을 누대에 걸쳐 만들고, 또 그 제조법을 문헌에 남겨 집안의 전통으로 이어가도록 만드는 순간, 미생물이 만든 에탄올은 더 이상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성 음료에 그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이를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는 공동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공유하며 인식을 서로 나누는 행위와 결과물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20세기의 상당 기간을 문화로써의 우리 술을 강제적으로 잊고 살아야 했다. 이유는 외압과 식량부족이었다. 외압은 일제에 의한 주세법과 주세령을 뜻한다. 법률의 틀에 가두면서 우리 술 문화는 강제적으로 자본주의에 편입됐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유의 술과 ‘봉제사 접빈객’의 문화를 잃게 됐다.

식량부족은 20세기 내내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쌀 부족을 말한다. 당시 권위주의 정부는 부족한 식량을 이유로 쌀과 곡물로 만들었던 우리 술 양조를 강제로 중지시켰다. 그리고 원조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막걸리를, 수입산 타피오카와 말린 고구마로 희석식 소주를 만들도록 강제했다. 이 과정은 우리 술의 문화적 사망선고를 뜻한다.

곡물 양조와 증류가 가능해진 것은 쌀이 ‘남아돌게’ 되면서부터다. 정부는 양곡관리 차원에서 1991년, 쌀 술(양조주와 증류주)을 다시 허용한다. 1977년 연속된 풍년으로, 일시적으로 쌀막걸리를 허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1965년 쌀이 부족해서 금지했던 논리와 1991년 쌀이 남게 되면서 허용한 논리나 모두 수급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책 결정 어디에도 우리 술을 문화로 바라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경제 논리에 따라 금제와 허가가 오갔을 뿐이다.

그리고 2025년, 우리는 여전히 ‘잉여’의 문제로 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문화적 관점에서 우리 술을 바라본 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 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1980년대 후반, 정부는 곡물 양조주와 증류주 부활 명분을 ‘문화’에서 찾았다. 그 결과가 바로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술이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식품명인’의 술도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무형유산과 식품명인의 술은 ‘전통’이라는 이름에 갇혀있어서 확장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가 찾은 방법이 농민주에서 출발한 ‘지역 특산주’였다.

지역 특산주 제도가 등장하면서 우리 술은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쌀, 누룩, 물’로 만드는 우리 술의 문화적 요소를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더뎠다. 이유는 민속주나 지역 특산주 제조업체가 모두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이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무장한 대기업 주류 회사와 어깨를 겨눌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브랜드 파워를 지닌 외국산 주류와는 경쟁조차 벌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숫자’다. 최근 발표된 2024년 국세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주류 생산량은 3,151,371 Kl이다. 그렇다면 민속주와 지역 특산주를 합친 전통주의 생산량은 얼마일까. 0.72%에 불과한 22,978 Kl이다. 출고액 기준으로 비교하면, 더 왜소해진다. 0.25%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판매’의 특혜를 받고 있고 ‘주세 감면’이라는 경제적 도움도 받지만, 숫자는 냉정한 자본의 벽 앞에서 허덕이는 중소 양조장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쌀 부족으로 셧다운한 양조장


▲ 경기도 파주의 미음넷증류소는 지난 8월부터 증류용 술덧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파주는 물론 인근의 연천과 김포에도 쌀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쉬고 있는 증자기 모습이다.

최근 쌀값 인상과 쌀 부족 문제가 농림축산식품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쌀은 남아돌지만, 술 빚을 쌀이 부족해 일부 양조장이 양조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파주의 미음넷증류소(대표 송충성)는 파주농협으로부터 쌀 공급 중단 통보를 받고 쌀 수배에 나섰다. 인근 지자체 농협에 연락했지만, 연천과 김포 농협으로부터 들은 답은 “쌀이 없다”였다. 돈이 있어도 술 빚을 쌀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송충성 대표는 증류주용 술덧 양조를 중지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독도 소주’를 생산하는 KR컴퍼니(대표 임진욱)도 같은 상황에 부닥쳤다. 지난 9월 1일 횡성농협으로부터 가격 인상 통보 공문을 받았다. 지난 3년간 쌀을 공급해 주던 농협에서 가격 인상과 함께 공급 중단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이유는 전국적으로 벼 원료곡 부족 현상이 발생해 재고가 부족해 햅쌀이 나올 때까지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9월 내내 임진욱 대표는 한차례 증류주용 술덧을 양조했다고 한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증류소에서 증류기 가동을 중지한 까닭은 해당 지자체에 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역 특산주 면허는 인근 지자체에서도 원료를 구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두 곳은 양조를 중단한 것이다. 

여기서 또 우리는 ‘남아도는’ 쌀 문제 해결에서 시작된 우리 술의 원초적 문제점과 맞닥뜨리게 된다. 송미령 농림식품부 장관은 쌀 가공산업을 햅쌀로 유도해서 쌀소비를 촉진하겠다고 올 초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전통주(민속주+지역 특산주)’ 부문에서 이들 양조장이 5년 이내에 3만 톤까지 햅쌀을 쓰도록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들 양조장에선 5600톤의 햅쌀을 술빚는 데 사용한 바 있다. 나름 야심 찬 계획이다. 

하지만 가격의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의 쌀값 인상과 관련해 계절적 요인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수급 불일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가격 변동성은 해마다 계속 발생했던 문제점이다. 더군다나 쌀 부족 사태는 초유의 일이다. 전국에서 단 두 곳의 증류소에서 셧다운했지만,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다양한 함의를 내포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

우선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별 수확량 예측이 힘들다는 점이다. 평년작 이상의 수확이 예상되는 해에도 국지적인 호우 등의 문제로 수확량이 감소한 지역은 발생하게 된다. 파주시의 쌀 부족 문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강원도의 경우 쌀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평년작 이하로 수확량이 줄게 되면 바로 쌀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수급 불일치와 계절적 요인에 의한 가격 변동성 문제에 대한 대책 없이는 햅쌀 위주의 전통주 진흥책은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제한적 범위에서 지역 특산주 제도의 보완은 반드시 필요하다. 


언제까지 WTO 제소를 핑계 댈 건가


기후변동성은 우리 농산물 지도를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술 지도도 조만간 기후변화와 함께 변화하게 된다. 일례로 남부 지방의 사과가 계속 북상해서 이제는 사과의 주산지가 중부 지역으로 바뀐 상황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남부 지역에서 사과 과실주를 만드는 농가형 와이너리는 더는 술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농가형 와이너리는 식용으로 판매하고 ‘남아도는’ 과실을 가공해서 농가소득을 높이려고 2000년대에 도입한 제도다. 지역 특산주에 포함해 국산 과실주를 진흥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과실주 영역에서도 수급 불일치 문제가 조만간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지역 특산주와 관련한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보리를 직접 농사지어 몰트를 만들어 맥주를 빚거나 위스키를 만들어도 우리는 이 술을 지역 특산주에 포함할 수 없다. 따라서 충북 음성과 전북 군산에서 만든 몰트로 맥주를 빚어도 통신판매는 불가능하고 세제 혜택도 받지 못한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김포에선 보리농사를 지어 위탁을 통해 가공한 몰트로 위스키를 만들었지만, 지역 특산주로 술을 팔 수가 없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을 요구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정부가 꺼내는 정부의 답변은 “외국 주류 회사에서 WTO에 제소할 가능성이 커서 현행 법률 개정이 힘들다”이다. 고작 1%도 안 되는 민속주와 지역 특산주 시장임에도 말이다.

일본은 1990년대 외국계 주류 회사가 증류주에 관한 세금을 동일하게 적용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다음처럼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의 쇼츄는 외국 증류주와 달리 식사 때 반주로 마시는 일종의 밥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처럼 항변했지만, 일본 정부는 WTO 제소에서 패소하고 만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 증류식 쇼츄 시장은 우리의 전통주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장점유율이 높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우리 술 연구 기관을 만들자


술 산업의 경쟁력은 양조 기술이다. 일본은 청일전쟁 과정에서 전비 확보를 위해 주세를 인상해야 했는데, 이때 양조장들은 인상 조치를 수용하면서 두 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자가 양조의 전면 금지와 양조 관련 연구소의 설립이었다. 자가 양조는 1899년, 연구소는 1904년 수용됐다. 이때 만들어진 연구소가 ‘국립 양조시험소’였으며 현재의 ‘주류 총합연구소’이다. 

일본 국립양조시험소는 일본양조협회와 함께 1911년 전국신주감평회를 개최했다. 해마다 질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경연을 열었다. 수상작 중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효모는 별도로 연구소에서 관리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효모가 현재 일본 사케와 쇼츄를 세계화하는 데 기틀이 돼주었다. 

우리 양조업계에서도 오래전부터 ‘한국술연구원’의 신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요구해왔다. 농촌진흥청과 한국식품연구원, 그리고 지자체 산하의 농업기술원에 흩어져 있는 양조 관련 인력을 모아서 통합적으로 우리 술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이다. 하지만 연구원 설립을 위한 노력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전체 술 산업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산업이어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국세에서 차지하는 주세의 비율도 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니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류와 함께 한국 술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 술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주품(품질)을 가져야 한다. 그 시작은 미생물에 있다. 지금 당장 연구원을 만들 수 없다면 우리 술의 핵심인 미생물에 관한 연구개발에라도 예산을 투입하자. 미생물의 체계적인 관리 없이 좋은 주질을 만들 수 없다. 이 같은 노력 없이 K 술을 세계화한다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우리 술을 보는 한 문화로서의 생명력은 확장될 수 없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