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감원이 증권사 조사에 신중해야하는 이유

2025-11-10     최석범 기자

"망가진 임직원의 인생은 누가 책임집니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 증권사를 대상으로 벌어진 금융감독원의 압수수색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금감원 조사로 낙인찍힌 임직원은 법원에서 무혐의를 받아도, 구조상 명예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점이 있는 증권사 임직원을 조사한다. ‘워치독’ 역할을 하지 않으면 주식시장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말마따나 이를 방치하면 일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증권사들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문제는 조사로 피해를 봐도 구제받기 어렵다. 금감원은 조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증권사 임직원이 소송 끝에 무혐의 판결을 받아도, 이를 알릴 방법은 사실상 없다. 떨어진 평판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일례로 지난 2015년 금감원은 SK증권이 ELS 기초자산의 주가를 조작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며, 검찰에 시세 조종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는 2년간 이뤄졌고 결국 무혐의로 끝났다. 금감원은 그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시하거나 보도자료로 배포하지 않았다. 수사로 고통을 겪은 임직원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 낸 입장은 검찰의 판단을 존중한다 정도다. 

억울해도 금감원에 따질 수 없다. 항의했다가 정기·수시 검사 등으로 보복당할 수 있다. 검사 대상에 오르고 중징계라도 받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최악의 경우 신규 사업 진출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발행어음 같은 중요한 사업에 진출이 막히면 경쟁사와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 쪽에선 금융위(원회), 금감원이 가장 무섭다 보니, 부당한 일을 겪고 공식 항의를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위법 행위 조사는 충실히 하되,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사후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조사 대상에 오른 것만으로도 임직원은 불명예와 주변 눈치에 시달린다. 직원들 사이에서 '문제 임직원'으로 낙인찍힐 개연성도 높다. 

틀린 조사에 책임지는 자세도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면, 보여 주기 식 조사를 했다는 논란을 키울 수 있다. 공적인 사후 대책 절차를 만들어 운영해야 감독·조사권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제 식구 감싸기로 유사 사례를 만드는 증권사의 반성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최석범 기자 csb@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