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토큰증권, 희망고문 언제까지
발표만 계속, 법제화엔 번번이 주저앉아 3년째 기대-실망 반복, 이달 정기국회 분수령
"올해도 법안이 통과될지 모르겠어요.” 토큰증권(STO) 제도화를 기다려 온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3년간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면서 피로감은 더 깊어졌다.
정부는 2022년 이후 혁신금융 과제 중 하나로 토큰증권을 선정했다. 발표와 간담회, 로드맵은 매년 쏟아졌지만 정작 제도화는 단 한 번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매번 통과될 것이라는 신호는 많았지만, 결과는 늘 제자리였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6월 가상자산 친화적 정부가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하며 또 한 번 업계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증권사와 핀테크들은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기대 하에 비용을 집행하며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7월로 예상됐던 법안 통과는 매월 지연됐고 현재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테이블코인에 밀렸고, 금융감독원 조직 개편 논란에 묻히고, 국정감사에 뒷전이 됐다. 그렇게 늘 정무위원회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났다. 지난 2023년 금융위원회의 입법예고 계획도, 2024년 김재섭·민병덕 의원의 발의안도 발의에서 멈춘 전례만 되풀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무위에서 토큰증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안이 30번대 후순위에 머물러 의원들 관심 밖"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달 통과되지 않으면 올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 사이 해외는 이미 제도 정비를 마쳤다. 미국은 2019년 토큰증권 발행을 허용했고 일본은 2020년에 관련 법 개정을 완료했다. 싱가포르도 2023년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확장 중이다. 한국만 법적 기반 없이 3년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제도 공백이 초래하는 혼란도 보인다. 최근 예비인가 접수를 마친 조각투자 장외거래소(유통플랫폼)가 대표적이다. 3곳의 컨소시엄이 경쟁하는 중으로 최대 2곳이 인가를 받을 예정이지만, 정작 토큰증권 법률이 부재하면 이 인가 역시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인가를 내놓고도 그 인가가 작동할 법적 틀은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경쟁력 저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실제 발행·유통 시장이 시행되기까지 최소 수개월 이상 걸린다. 입법이 늦어질수록 혁신 기업과 자금은 이미 제도가 갖춰진 해외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판단은 이달 정기국회에 달렸다. 발표만으로 시장은 움직이지 않고, 기대감만으로 산업은 성장하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건 법제화다. 토큰증권이 또 한 번 조각난 약속으로 남을지, 아니면 드디어 제도권에 편입될지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대한금융신문 김세연 기자 seyeon723@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