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분쟁사례]
'전문가적 의구심'을 잊은 문지기, '파두 사태'의 본질

송태원의 쉽게 푸는 자본시장 46

2025-11-17     송태원 변호사
송태원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

최근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FADU)'의 상장 과정에서 발생한 실적 쇼크와 그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주관 증권사 등을 상대로 증권 집단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은 우리 자본시장에 또다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2의 파두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가. 이 사태는 IPO 시장의 '문지기' 역할과 투자자 피해 구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과제를 안고 있다.

IPO 문지기, '전문가적 의구심'의 책임

공모주 투자는 많은 개인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상장 전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신뢰의 핵심에는 바로 상장 주관사가 있다.

주관사는 기업의 재무 상태, 사업 모델, 성장 가능성을 면밀히 실사(Due Diligence)하고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예측을 거쳐 최종 공모가를 확정한다. 이 과정은 기업의 펀더멘털과 시장 환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적정 가치를 시장에 제시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본질적인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상장 기업은 더 높은 가치를 원하고, 주관사 역시 IPO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파두 사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주관사의 기업 실사 및 가치 평가가 과연 충실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초래했다.

이는 '전문가로서의 법적 책임'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해 볼 지점이다. 물론 주관사와 감사인의 법적 책임이 동일하지는 않으나, 전문가의 주의의무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대법원은 재무제표 감사인의 주의의무에 대해, "재무제표의 중요한 부분이 왜곡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적인 의구심'을 가지고 감사업무를 계획·수행해야 한다는 점"이 그 핵심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68848 판결).

이 판결의 취지는 주목할 만하다. 즉, 전문가의 주의의무는 법령에 명시된 조문뿐만 아니라 '그 업무의 본질'에서 도출되며, 그 본질은 일반인의 기대를 넘어서는 '전문가적 의구심(Professional Skepticism)'을 견지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를 상장주관사의 역할에 유추해 본다면, 주관사 역시 IPO라는 중대한 시장 진입 과정에서 '문지기'로서 고도의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본질적인 의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연간 1,200억 원대의 매출 전망과 상장 직전 분기 1억 원 미만의 실적이라는 극단적인 괴리는, 과연 주관사가 '전문가적 의구심'을 가지고 실사에 임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향후 소송 과정에서 이 부분이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길고도 험난한 집단소송의 길

문제는 전문가의 책임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투자자가 실제로 피해를 구제받는 길은 험난하다는 점이다. '증권 집단소송'은 투자자가 의지할 수 있는 법적 구제 수단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과거 4만여 명의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긴 '동양그룹 사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영진은 사기적 CP 발행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지만, 피해 구제를 위한 민사상 증권 집단소송은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 결국 투자자들의 패소로 확정되었다.

법원은 증권신고서의 거짓 기재나 누락이 "투자 판단에 중요하게 고려할 만한 사항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소송 허가를 받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본안 소송에서도 높은 법적 기준을 넘지 못하며 결국 소송 비용 부담 등으로 상고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대해 형사적 처벌이 이루어지더라도, 피해자인 투자자들의 민사상 피해 구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파두 사태의 투자자들 역시 이제 막 그 길고 험난한 법적 다툼의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신뢰 회복을 위한 과제, 집단소송 제도의 실효성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는 그 실질이 '시장을 통한 사기 행위'와 다름없다. 이에 대한 제재는 위법행위 억제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 행정적·형사적 제재가 강화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것일 뿐, 투자자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상해 주지는 못한다. 결국,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축이 동시에 개선되어야 한다.

첫째, IPO 단계에서 주관사가 단기적인 흥행보다 '전문가로서의 본질적인 주의의무'를 다하도록 시장의 감독과 법원의 판단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피해 발생 시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증권 집단소송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소송 허가 요건을 합리화하고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여, '긴 싸움에 지쳐 포기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파두 사태에 대한 이번 집단소송은, 우리 사법부가 자본시장 '문지기'의 책임을 어느 수준에서 인정하고 투자자 보호의 문을 얼마나 넓힐 것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