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는 한투] ③‘관행’으로 방치된 내부통제
“고객-PB간 신뢰가 범죄 욕구로 돌변” 높은 수준의 내부통제만이 일탈 막아
한국투자증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고에는 ‘관행’으로 방치한 내부통제 체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본지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 한국투자증권 영업점에서 PB가 고객에게 비밀번호를 구두로 묻고, 매수 주문을 진행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관련기사: 2025년 11월 17일 본지 보도, “매수 걸게요, 비밀번호 말하세요”…한투증권 객장서 무너진 보안>
규정상 고객이 유선으로 거래할 때는 휴대폰으로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창구에서도 고객이 직접 ‘핀패드’를 통해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그러나 한투증권의 경우 고객이 말로 전달한 계좌 비밀번호를 활용해 개인정보를 직접 조회하거나 주문 체결을 진행하는 등이 가능했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실제 증권사의 영업 현장에서는 관행적으로 고객와 PB간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알려졌다.
이를 두고 한 증권사 PB 출신 임원은 "증권사 직원은 업무상 고객의 민감정보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바뀌면 신뢰 관계의 틈을 비집고 범죄 욕구가 들어올 수 있다"라며 "원칙적으로 고객만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사 영업점은 지점장 아래 상품 판매를 담당하는 PB, 고객 응대 창구 직원, 그리고 매매 서류를 검토·관리하는 업무팀으로 구성된다. 이들 중 PB는 독립적인 형태로 업무를 진행해 높은 수준의 감시와 내부통제 없이는 일탈을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렇다 보니 PB 개인의 일탈이 실제 피해로 이어질 때까지 어떠한 방지턱도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고객 돈을 빼돌려 도박을 한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이어진 한투증권 모 영업점 PB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2025년 11월 5일 본지 보도, 한투증권 직원 고객돈 수억원 빼돌려 도박>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PB는 피해 고객에게 새로 나온 확정금리형 특판 상품을 신규 자금 납입 없이 가입시켜 주겠다고 속였다. 이를 위해 피해 고객의 자금을 해당 PB의 차명계좌로 옮겼다 재투자해야 한다고 꼬드긴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고객이 노령이라는 점과 PB와의 라포(심리적 친근감)로 인해 실제 특판 상품에 투자했는지마저 확인 절차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철저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PB 개인의 윤리 의식에만 맡겨서는 고객과의 거래 과정에서 민감정보를 처리하거나 PB 개인의 계좌를 고객과의 거래에 활용하는 등을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투증권 내부서 운영하는 윤리 교육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분기 또는 반기마다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의 형태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 한투증권에 근무했던 한 PB는 "주기적으로 윤리 교육을 하지만 대부분 동영상만 켜놓고 다른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라고 토로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내부 감시 제도를 좀 더 촘촘하게 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도덕성을 강조하는 교육도 병행해 범죄 욕구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이원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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