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IB, 발행어음 수십조 굴려놓고…벤처투자 고작 1.8%

4개 증권사 국내투자 현황 살펴보니 대기업·부동산 쏠림…제도 취지 무색 김상훈 “모험자본 확대로 신뢰 부응해야”

2025-11-26     김세연 기자

국내 초대형 투자은행(IB) 사업자들이 발행어음으로 끌어모은 수십조원의 자금을 대부분 대기업・부동산 등 안전자산으로만 운용하고 있었다. 

금융당국이 혁신・성장 기업에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고자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어음 발행을 허용한 제도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사업자의 모험자본 투자 실적은 고작 2% 내외다.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 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초대형 IB(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의 발행어음 조달 총액은 올해 9월 말 기준 47조7866억원으로 지난 2023년(35조9155억원) 대비 33% 급증했다.

이들 4개사의 투자금액 역시 29조3177억원에서 37조9873억원으로 30% 증가했다. 대기업 투자는 10조9338억원에서 14조4496억원으로 32%로 크게 늘었고, 부동산 투자는 4조3053억원에서 3조8801억원으로 약 10% 감소했다. 

초대형 IB 모두 모험자본 투자는 외면했다. 전체 투자금액서 모험자본으로 분류되는 벤처 및 스타트업 투자는 2694억원에서 4883억원으로 81% 늘었지만, 전체 투자금액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연도별로는 △2023년 0.9%(2694억원) △2024년 1.0%(3750억원) △올해 9월 말 1.2%(4883억원) 등 초라한 실적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전체 투자금액 61조9579억원 중 63%(39조838억원)가 대기업, 20%(12조4001억원)가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벤처·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1조1327억원으로 전체의 1.8% 수준에 불과했다. 

개별 증권사로 살펴보면 안전자산 투자 쏠림이 두드러졌다. B증권사는 15조3515억원을 대기업에 쏟아부었다. B증권사가 3년간 업종별로 투자한 전체 금액(17조1512억원)의 90%다. C증권사는 부동산 관련 투자에만 6조9155억원을 투입해 4개사 중 부동산 투자액이 가장 많았다. 벤처 투자는 각 증권사마다 최소 1070억원에서 최대 5326억원 수준에 그쳤다.

김상훈 의원은 "증권사들은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해 시장 신뢰에 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모험자본 의무투자비율 강화' 뿐만 아니라, 모험자본 공급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건전성 규제가 일부 완화돼야만 기업자본 구성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기 신용으로 발행하는 단기 금융상품으로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해당 사업은 초대형 IB로 지정된 증권사만 영위할 수 있어 지난 2017년 한국투자증권의 인가를 시작으로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4개사가 시장을 형성해왔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 허용 당시 혁신기업 모험자본 공급 확대와 투자은행 중심 기업금융 서비스 강화를 목표로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 자금조달을 허용하고, 부동산 투자한도도 30%로 완화하는 등 글로벌 IB 수준의 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험자본이나 종합 기업금융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주가연계증권(ELS) 등 단기수익형 자산에 집중하며 재무구조가 탄탄한 대기업 위주의 투자가 고착된 상태다.

한 자본시장 연구원은 "초대형 IB들은 부동산과 대기업에만 의존하면서 외형 확장이라는 양적 성장은 이뤘지만, 정작 사업 차별화나 질적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러한 운용 방식은 내년부터 변화가 불가피하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며 내년부터 모험자본 투자 의무를 도입해 시행하기로 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는 발행어음·IMA 조달액의 25%를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모험자본에는 중소·중견·벤처기업의 증권 및 대출채권, A등급 이하 채무증권(대기업 계열 제외), 벤처·신기술사업 조합 출자 지분, 모태·코스닥벤처·하이일드·소부장 펀드 관련 자산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부동산 관련 자산 운용한도는 기존 30%에서 10%로 축소돼, 안전자산 중심 운용에는 제약이 생기게 된다.

대한금융신문 김세연 기자 seyeon723@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