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 못한 선순위 청산…위험성 놓친 금감원
[부동산펀드의 배신④]

한투리얼에셋운용의 선순위 대출 계약 자본법상 곧바로 공시했어야 했는데도 작년 채무불이행 터지고서 처음 공개

2025-01-23     박이삭 기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편집자주> 해외 부동산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판매 증권사는 안전성을 강조하며 투자를 권유했지만 위험의 본질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펀드를 조성한 운용사가 부실하게 사업을 진행한 정황도 포착됐다. 대한금융신문은 부동산펀드의 판매 실태와 구조적 문제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한편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 본다.

‘한국투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벨기에 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를 투자자가 미리 인식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지난 5년간 어떤 공시에도 선순위 대주의 일방적인 자산 청산 가능성을 적시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역시 부동산펀드가 가진 치명적 리스크를 수년 전부터 미리 경고하고 나섰음에도,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에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들, 5년간 엑시트 기회 놓쳐


벨기에 펀드 사태의 최대 쟁점은 선순위 대주의 매각 위험성과 관련 현황이 적시에 고지됐느냐다. 투자자는 물론 최대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 직원들은 지난 2019년 펀드 출시 당시 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같은 시기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은 없다.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없는 사모펀드와 달리 공모펀드는 금감원으로부터 신고서를 심사받아야 하는데, 벨기에 펀드의 신고서에는 현지 대출금액에 대한 총 액수만 명시돼 있을 뿐 선순위 매각에 대한 위험성은 기재되지 않았다.

<관련기사: 본지 2025년 1월 14일 보도, 82세 노인도 산 초고위험펀드…한투 직원 “위험성 몰랐다” [부동산펀드의 배신①]>

증권신고서는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120조에 따라 그 효력이 발생하더라도 기재사항의 정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제출을 받더라도 펀드의 세세한 내용까지 보증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단, 자본시장법 89조에 따르면 투자신탁(펀드)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지체 없이 공시(수시공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부동산집합투자기구(부동산펀드)의 경우 부동산 관련 권리 변경뿐 아니라, 금전의 차입 또는 금전의 대여도 수시공시 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투리얼에셋운용은 지난 2019년 9월 벨기에 오피스 자산 매입을 위해 선순위 대주와 체결한 대출 계약을 공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투리얼에셋운용이 선순위 대주와의 대출 계약을 처음으로 공시한 시점은 지난해 6월이다. 이때는 건물 매각에 실패해 이미 선순위 대출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발생한 시기였다.

해당 펀드가 한국거래소에 상장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들은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투자금을 엑시트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벨기에 펀드와 같은 폐쇄형 공모 부동산펀드는 환매가 불가능한 대신, 펀드 지분을 거래소에 상장시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 중간에 자금 회수를 원하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당국의 상황 인식은 이런 사정과 배치되는 모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벨기에 펀드의 선순위 매각 과정이나 그 결과에 대해 모니터링 하고 있다”면서도 “감독당국이라고 해서 실질적인 액션을 취할 여지는 없다”고 전했다.


모범규준 만들라더니…정작 선순위 위험성 부재


금감원이 해외 부동산펀드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한 건 부동산펀드 광풍이 절정에 이르던 지난 2020년부터다. 당시 금감원은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를 통해 해외 부동산펀드의 현황과 대응방안을 다뤘다.

그 다음해인 2021년에 발간된 위험 분석보고서는 “해외 부동산펀드의 투자자산 대부분이 코로나19 영향이 컸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위치해 리스크 확대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경기회복 지연 시 펀드 수익성이 하락하고 자금회수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022년 발간된 위험 분석보고서 역시 “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 가능성 등이 제기됨에 따라 부동산 펀드의 수익성도 하락할 수 있다”며 “만기 도래시 시장 상황에 따라 매각 가격 하락, 매각 지연 등 만기 자금 회수(Exit)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2021년과 2022년 발간된 보고서 모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을 제시하고 있다.

2022년 위험 분석보고서는 “자산운용사가 부동산펀드 등 대체투자펀드 설정·운용 시 준수해야 하는 ‘대체투자펀드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을 시행 중”이라며 “규준에 따라 운용사는 펀드 설정시 사전에 리스크 분석을 실시하고, 설정 이후에도 사업성 및 제반 리스크 변동 내용을 주기적으로 분석·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모범규준엔 선순위의 강제 매각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 없는 실정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만든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에 따르면 벨기에 펀드에 해당하는 임대형 부동산펀드의 경우 임대 안정성과 매각 가능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형 부동산펀드에선 선·중·후순위 등 변제 순위를 리스크 요인으로 명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선순위의 일방적인 자산 매각은 당국도 예상치 못한 리스크”라면서도 “앞으로는 이런 가능성을 (모범규준 내) 리스크 요인으로 명문화해 투자자 보호를 기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