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무시하며 판매된 벨기에 펀드
직원조차 선순위 매각 가능성 몰라
지역 가리지 않고 피해사례 잇따라
2025년 1월 13일 18:13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편집자주> 해외 부동산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판매 증권사는 안전성을 강조하며 투자를 권유했지만 위험의 본질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펀드를 조성한 운용사가 부실하게 사업을 진행한 정황도 포착됐다. 대한금융신문은 부동산펀드의 판매 실태와 구조적 문제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한편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 본다.
고령자에 펀드 ‘대리청약’ 시도까지
지난 2019년 6월 한국투자증권 G센터의 직원은 한 노인(이하 A씨)에게 투자상품을 권유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현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에서 내놓은 ‘한국투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벨기에 펀드)’, 투자위험 1등급의 초고위험 펀드였다. 노인은 1937년생, 당시 나이는 만 82세였다.
직원은 상품의 우수성을 말하면서 노인의 아들 명의로 청약하도록 했다. 아들의 인감도장을 챙겨 G센터로 간 A씨는 직원의 지시에 따라 청약 신청서에 아들의 이름·계좌번호·상품명 등을 적었다. 대리인이 청약할 때 필요한 위임장이나 신분증 확인 절차는 없었다. 원금 보존 추구·상품 설명서 교부 등 체크리스트는 직원이 대신 V자 체크를 했다.
아들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지만 환매가 불가능한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5년 동안 상품을 떠안았다. 해당 펀드는 지난달 선순위 대주인 영국 생명보험사 로쎄이(Rothesay)의 일방적인 자산 매각으로 전액 손실 처리가 됐다.
A씨의 아들은 “판매 직원은 설명서 교부도 안 했을 뿐더러 (어머니한테) 좋은 상품이니 빨리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며 “절차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상품을 무리하게 가입시켰다. 판매 직원도 절차상 하자가 있었단 걸 인정했다”고 말했다.
노인에게 상품을 팔았던 직원은 현재 서울 모처 PB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해당 직원은 대한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금융감독원을 통해 민원이 제기됐고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전액 손실 사태를 일으킨 벨기에 펀드는 벨기에 건물관리청 건물의 장기임차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임대료에 바탕한 배당 수익과 자산 매각을 통한 수익을 함께 추구해 왔다. 해당 펀드의 총 투자자는 2500여명이고 전체 설정액 900억원 중 한국투자증권의 판매액은 590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설정액은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서 판매됐다.
장기임차권이란 소유자처럼 부동산을 사용해 수익을 내는 권리를 뜻한다. 주요 판매사인 한투증권과 운용사인 한투운용은 이 장기임차권에 대해 “제3자 대항력이 있고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국내법상 지상권과 유사하다”고 홍보했다.
아울러 △임대율 100% △2030년까지 벨기에 정부기관과의 장기 임대차계약 △투자원금 100%·배당금 80% 환헤지 등으로 안정적 현금흐름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직원도 몰랐던 선순위 청산 가능성
투자자들은 청약 당시 선순위 대주의 일방적인 자산 청산 가능성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자들이 받은 투자설명서에도 선순위 청산에 대한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다.
투자자 B씨는 D시에 위치한 한국투자증권 영업점을 통해 벨기에 펀드에 투자했다. 당시 영업점 직원은 투자위험 1등급과 경매·매각 지연 가능성을 우려하는 B씨와의 통화에서 “환매가 안 되면 다 1등급”이라며 “(건물이) 정부 소유냐 아니냐가 되게 중요한 거”라며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자동적으로 이자(배당)를 갖고 있다가 원금도 나오는 상품”이라며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다른 부동산 펀드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일선 직원들조차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벨기에 펀드를 팔았다는 점이다.
해당 직원은 대한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선순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팔았다”며 “고객 입장이 너무 억울하듯이 판매하는 직원도 마찬가지로 억울하다”고 전했다.
투자자 C씨도 동일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C씨는 서울 S구 PB센터에서 벨기에 펀드에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 사태를 당했다.
C씨에게 벨기에 펀드를 판매한 직원은 현재 본사 근무 중이다. 해당 직원은 지난 연말 C씨와의 통화에서 선순위 대주의 강제 매각에 대해 “2019년 상황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그걸 알고서 판매하진 않았을 거다. 알면서 그러면 말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취재 결과 이런 판매 실태는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금감원은 접수된 관련 민원을 토대로 한국투자증권 직원들에게 진술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자체 조사를 통해 자사의 불완전판매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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