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서류 사후작성에 투자설명서 미배포
‘가짜’ 투자성향 진단 후 서명만 받기도…
2016년까지 큰손 전유물이던 부동산펀드
저금리에 개인 상대 전사적 판매 부작용
2025년 1월 15일 16:35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편집자주> 해외 부동산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판매 증권사는 안전성을 강조하며 투자를 권유했지만 위험의 본질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펀드를 조성한 운용사가 부실하게 사업을 진행한 정황도 포착됐다. 대한금융신문은 부동산펀드의 판매 실태와 구조적 문제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한편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 본다.
“배당 확정…안정성도 특별히 점검했어요”
지난 2017년 투자자 K씨는 광주광역시 소재 한국투자증권 PB센터에서 유선상 투자권유를 받곤 했다. K씨에 의하면 판매직원은 자산관리계좌(CMA)에 돈이 두둑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왔다. 직원이 소개한 상품은 ‘하나 대체투자나사 부동산투자신탁1호(나사 펀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입주한 빌딩에 투자해 임대 수익과 건물 매각 수익을 함께 추구한다.
직원은 고정적인 임대 수익을 채권 투자에 비유했다. 당시 그는 K씨와의 통화에서 “만기가 좀 긴 장기 채권에 가입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며 “수익률과 상관없이 배당(임대 수익)은 확정적으로 계속 드린다”라고 말했다.
직원은 지난 2019년에도 K씨를 상대로 부동산펀드를 팔았다. ‘한국투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벨기에 펀드)’와 ‘한국투자 뉴욕오피스 투자신탁1호(뉴욕 펀드)’였다. 이번에도 직원은 유선과 문자로만 상품의 안정성을 어필했다.
그는 벨기에 펀드에 대해 “벨기에 빌딩은 우리나라로 치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임차인으로 들어가 있어 안정적이다. 인기가 워낙 많아 물량이 부족하다. 투자 기간은 4년 정도 보고 있다”며 청약을 재촉했다. 뉴욕 펀드에 대해서는 “연 6.6% 수준의 배당이 확정됐다”며 “안정성 점검은 운용사 대표까지 나설 정도로 매우 특별하게 진행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K씨는 세 개의 펀드에 총 1억4000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직원이 언급했던 임대 수익에 비해 실제 계좌에 입금되는 돈은 턱없이 낮았다. 나사 펀드와 뉴욕 펀드의 수익률은 원금 대비 40~50% 떨어졌다. 게다가 두 펀드의 만기는 줄줄이 연장됐다. 제 가격에 건물을 사들일 원매자를 못 찾은 탓이다. 벨기에 펀드 투자액은 선순위 대주의 일방적인 자산 매각으로 전부 날아갔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펀드 청약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청약서류는 실제 청약일 이후 사후적으로 작성됐고 투자설명서 교부도 이뤄지지 않았다. 직원은 자의적으로 K씨의 투자성향을 진단한 뒤 K씨에게는 투자성향 확인서 서명만 받았다. 당시 상품을 판매한 PB센터는 K씨가 직접 투자성향을 체크한 설문지를 지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K씨에게 부동산펀드를 팔았던 직원은 현재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근무 중이다. K씨는 당시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직원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당 직원은 취재기자의 통화와 문자메시지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K씨는 “(판매했던 직원이) 어떻게 전화조차 안 받을 수 있는지 정말 화가 난다”며 “후임 직원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으니 민원을 넣으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는다”고 말했다.
본사도 동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판매 후 직원이 변경되면 지점에서 다시 상품 담당자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며 “현 담당자에게 우선 연락해 상담이나 민원을 진행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저금리가 촉발한 부동산펀드 광풍…결말은 처참
K씨에게 부동산펀드가 지속 판매된 상황을 이해하려면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 부동산펀드는 기관투자자 등 큰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2016년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부동산펀드 열풍이 일어났다. 시발점은 한국투자증권에서 판매한 ‘하나대체투자 티마크그랜드종류형 부동산투자신탁1호(티마크 펀드)’였다.
해당 펀드는 서울 명동에 위치한 티마크그랜드호텔에 투자해 임대·매각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당시 한국투자증권이 ‘연간 5.5% 수준의 배당을 지급한다’고 홍보한 결과 판매 1시간 만에 300억 모집액이 매진됐다. 추가로 확보된 210억원 물량도 소진됐다.
티마크 펀드는 지난 2021년 7월 만기될 예정이었으나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만기가 연장된 상태다. 자산 매각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펀드 운용사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측은 “아직 매각대금의 잔금이 회수되지 않았다”며 “추후 잔금이 회수되면 펀드 청산에 따른 분배 및 상환금에 대한 공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매각이 진행된 펀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이자 부동산펀드 광풍의 정점이었던 2019년까지도 한국투자증권은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해 한투증권이 완판시킨 부동산펀드 모집액은 41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무사히 상환된 펀드는 ‘한국투자 도쿄한조몬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뿐이다. 나머지는 건물 매각 지연으로 만기가 연장되거나 전액 손실 사태에 처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2016~2017년 제로 금리에 가까웠던 시장 환경이 부동산펀드 열풍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한다. 과거 손쉽게 연 5~6% 이상 수익률을 낼 수 있을 땐 부동산펀드가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긴 트라우마도 부동산펀드 열풍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중후반까지 주식보다 부동산펀드에 쏠리는 흐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016~2017년 당시 한미 금리차가 크게 줄어든 까닭에 환손실이 생겨 해외 부동산펀드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며 “때문에 큰손들이 부동산펀드 투자를 기피했고, 업계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개인에게 부동산펀드를 공격적으로 팔았다”고 전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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