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약관심사시스템 개선해
‘깜깜이’ 신고수리 전후 결과
전 보험사에 개방…과당경쟁 이끈
상품 변경공고 역시 전부 조회돼
“이제 ‘몰랐다’ 변명 안 통할 것”

(사진=금감원).
(사진=금감원).

내년부터 모든 보험사가 신규 보험상품의 사전신고 과정을 열람해 볼 수 있게 된다. 이후 후발 보험사가 판매한 상품이 금융감독원의 변경 권고를 받는 경우, 그 히스토리도 전부 확인할 수 있다.

현행 사전신고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려는 조치다. 지난 2015년 금융당국이 사전신고할 보험상품의 대상을 대폭 줄인 탓에 ‘신고수리’ 없이 자율로 상품을 파는 보험사마다 보험가입금액을 상향하는 등 출혈경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연내 약관심사시스템 내 ‘신고수리 현황 조회’를 신설한다. 이에 최종 신고수리된 상품의 기초서류(약관, 사업방법서 등) 본문을 모든 보험사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최초 신고수리 및 이후 판매 과정에서 금감원이 내린 기초서류 변경 권고의 취지와 내용까지 전부 조회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보험사는 사전신고 접수 시 상품의 보장유형, 담보 종류, 최대 가입금액 등을 약관심사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현재는 위험보장을 최초 개발(신규 위험률)한 보험사만 신고수리 과정을 알 수 있어 ‘깜깜이’ 심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로 인해 최초 보험사가 사전신고를 마친 상품을 판매하는 후속 보험사는 “신고수리 내용을 잘 모른다”라는 핑계로 과도한 보장을 제공해 문제가 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약관심사시스템을 통해 사전심사 과정이나 변경권고를 모두 확인해 볼 수 있다”라며 “과거에 이뤄졌던 상품 변경권고 등에 대해 ‘몰랐다’며 위험 상품을 내놓는 식의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금감원이 기초서류 변경을 권고한 운전자보험의 변호사선임비용 담보가 대표적인 예다. 이 담보는 피보험자가 자동차 사고로 재판 대응 등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때 보험가입금액 한도로 변호사 선임비용을 보상한다.

현재 판매되는 상품은 당초 의도와 달리 보장한도가 1억원까지 치솟았다. 이조차 사건의 경중이나 심급(1~3심 재판 여부)과 관계없이 정액으로 지급, 1심에서 종결된 사건도 3심 비용까지 보장하게 됐다. 금감원은 이러한 구조가 보험금 과당 청구와 과도한 수임료 청구로 이어진다고 봤다.

실제 주요 손보사 5곳(삼성·DB·메리츠·현대·KB)의 변호사선임비용 지급보험금은 지난 2021년 146억원에서 지난 2023년 613억원으로 4배 급증했다. 변호사선임비용 담보가 금감원 사전신고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맹점을 이용해 보험사 스스로 과당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이외 상품으로는 지난해부터 유행한 독감보험이나 간병인보험이 있다. 최초 금감원에 신고 수리할 때는 문제가 없던 상품이었지만 베껴 판 보험사마다 보장금액을 키워 피보험이익을 극대화하자 손해율이 급등했고, 올해 예실차(예상과 실제의 차이) 손실로 이어졌다. 

일각에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허술해진 사전심사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지난 2015년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통해 보험상품의 사전신고제를 사후보고제로 전환한 바 있다. 상품개발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사전신고 대상 상품으로 남은 건 보험사가 위험보장을 최초로 개발하는 경우와 의무보험 정도다. 당시 금융당국은 부실상품 판매에 대한 사후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상품설계 기준을 위배한 상품에 대한 변경 권고 발동 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실제로 이뤄진 적은 없다고 알려졌다.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사전신고를 통과한 타사 상품을 베껴 위험률을 스스로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실상 최초 신고된 상품과 전혀 다른 상품이 된 것”이라며 “위험한 상품에 대해 변경권고나 행정지도 등으로 대응하면 더 이상 팔 수 없게 된 보험사는 절판마케팅으로 활용한다. 보험상품을 감리하는 조직과 기능이 축소된 결과”라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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