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피나무, 단단한 열매로 염주 만들어 보리수라 불러
인도보리수와 이파리 등 유사, ‘깨달음’ 상징하는 문화 차용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8월에 찾은 조계종 5대 총림 중 하나인 장성 백암산 백양사의 보리수나무가 한창이다.
갈참나무가 사열하는 들머리를 걸어 들어가면 그 길의 끝에서 큰 연못에 세워진 쌍계루를 만나게 되고, 다리 건너 사천왕문에 들어서면 범종 등의 사물이 모여 있는 범종루를 만나게 된다.
그 범종루에서 대웅전으로 향해 몸을 돌리면 절집 마당을 한 아름 채우고 있는 키 큰 보리수나무를 만나게 된다.
하트모양의 이파리는 산처럼 나무에 달려 있고, 흐드러지게 열려 있는 열매는 뜨거운 여름임을 증명하고 있는 백양사의 보리수나무.
가을쯤이면 이 열매는 검은색을 띨 것이며 딱딱해진 이 열매들은 염주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절집에서 보리수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보리수나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도의 보리수나무와 다르다고 한다.
인도보리수는 뽕나뭇과에 속하는 무화과나무의 일종이다. 나무 높이는 10~20m에 달하며 인도가 원산인만큼 아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파키스탄에서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넓디넓은 인도아대륙에 분포하는 이 나무는 그런 까닭에 불교는 물론 힌두교와 자이나교도들 모두에게 신성시된다.
그래서 이곳에서 ‘보리수를 찾아간다’는 말은 기도하려 사원에 간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인도에는 또 하나의 보리수나무가 있는데, 석가모니가 꺠달음을 얻은 후 5주 동안 보낸 벵골보리수가 그것이다.
이 나무도 인도에서는 기도와 명상의 장소로 흔히 쓰이며 때로는 불상이나 사원이 이 나무에 뒤덮이기도 한단다.
그렇다면 아열대 기후인 인도 원산의 보리수가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나무들인데, 전국에 걸쳐 절집은 물론 산과 들에 보리수라고 칭해지는 나무가 산재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땅에 불교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긴 듯하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는 상징성은 인도 불교는 물론 중국 불교와 우리나라의 불교에서도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보리수가 우리 지형에서 잘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이와 유사한 나무가 대안으로 제시됐을 듯하다.
그때 까맣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 피나무에 주목하게 됐을 터이다.
염주를 만들 수 있는 이 나무의 이파리도 인도보리수와 유사해 이미지를 빌려 오는데 충분했을 듯싶다.
그래서 절집에선 이 나무를 보리수라고 칭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일종의 문화적 차용이다.
그런데 이 땅에는 보리수라고 불리는 나무가 제법 많다. 앞서 설명한 피나무는 물론 모감주나무나 무환자나무도 흔히 보리수라고 불린다.
이와 함께 정원수로 쓰이는 뜰보리수도 있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중국에서 따라 들어온 중국 피나무인 보리자나무도 보리수라고 불린다.
공통점은 모두 그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고, 인도보리수와 이파리가 비슷한 나무들을 모두 ‘깨달음의 길’을 뜻한 단어 ‘보리(菩提)’로 부른 듯하다.
그중에서 절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는 피나무다. 백양사의 보리수나무도 피나무다. 피나무는 나무의 껍질(皮)을 섬유처럼 이용할 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곧게 성장하고 목재의 결이 곱고 목질도 고른 편이어서 궤짝과 밥상 등은 물론 조각재로도 많이 사용되는 나무다.
피나무의 껍질은 삼베보다 질기고 물에 잘 견딘다. 그래서 양질의 섬유를 얻을 수 있는 식물이다.
기왓장 대신 지붕을 덮는 데 이용할 수 있었고, 신발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였으며 끈과 밧줄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쓰임새를 갖고 있기에 이 나무의 정체성이 껍질(皮)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피나무가 인도보리수를 대신에 이 땅에선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로 쓰이고, 가구나 신발과 꿀 등 다양한 민간의 수요를 채워주는 나무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