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향하지 않고 농촌 향하고 있는 권용인 대표의 나침반
문화농부 지향하며 홍천군 수제맥주 고장으로 만들고 있어

지난 2016년 홍천으로 귀촌한 농담맥주학교의 권용인 대표(사진)가 자신의 맥주를 시음하며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6년 홍천으로 귀촌한 농담맥주학교의 권용인 대표(사진)가 자신의 맥주를 시음하며 설명하고 있다.

“술은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넓은 들판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산자로서의 농부 시대를 고집하기보단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문화로 재정의하고 ‘문화농부’를 자처하는 홍천 ‘농담맥주학교’의 권용인 대표의 ‘술 담론’이다.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나와 손으로 완성하는 것이 술이지만, 실제 넓은 들판에서 내놓는 먹거리가 없으면 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많은 사람이 쌀을 생산해야 농부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는 공간을 주고 문화를 주는 사람도 농부”라고 말하는 권 대표.

그래서 그는 농촌의 생산물인 먹거리는 물론 농촌이 가진 자연,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더딘 일상 모두를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을 잡아 줄 수 있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문화상품으로 농촌이 살아가야 할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권 대표가 선택한 아이템이 ‘맥주’다. 도회지의 이미지를 가진 맥주를 홍천에 심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밀집한 대도시도 아닌 인구 7만 명이 안 되는 ‘홍천’에서 수제 맥주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반대도 많았다고 한다.

이미 도시에 많은 브루어리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어떻게 홍천에서 만든 맥주를 팔 수 있겠느냐는 것이 반대의 주요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관점은 출발점부터 달랐다.

우선 권 대표가 생각하는 맥주는 ‘맥걸리’다.

막걸리도 맥주도 아닌 맥걸리. 권 대표는 “우리 할머니들은 보리에 싹을 틔워 만든 엿기름으로 식혜(감주)를 만들었고, 여기에 효모를 넣으면 맥주가 되고, 누룩을 넣으면 막걸리가 된다”고 말한다.

강원도 홍천에서 문화농부를 지향하며 마을맥주를 심고 있는 ‘농담맥주학교’ 전경. 100리터 발효조로 지역의 농부들에게 맥주양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문화농부를 지향하며 마을맥주를 심고 있는 ‘농담맥주학교’ 전경. 100리터 발효조로 지역의 농부들에게 맥주양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즉 같은 보리로 만들어서 발효시킨 술이라는 점에서 두 술은 문화를 같이 하고 있고, 그 술은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힘든 농사일을 나서는 식구들에게 노동주가 되어 주었고, 일을 마친 동네 사람들에겐 피로를 푸는 청량음료가 되었다.

현재의 수제 맥주는 문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외국에서 유행하는 트렌드가 들어와 도시에 정착한 경우이지만, 막걸리처럼 농촌에서 출발해 도시에서 소비되고 있는 술이라는 점은 똑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도시에 판매하는 맥주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홍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홍천을 팔기 위해 맥주를 빚는다고 말한다.

휴식을 위해 홍천을 찾는 사람들이 농부들이 직접 빚은 맥주를 체험하게 되면, 도시에서 소비되던 맥주에게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수제 맥주 양조장에게도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모이면 소비층은 더욱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맥주학교에는 홍천군의 8개 마을과 인근 지역 농부들이 찾아와 맥주 양조 교육을 받는다.

무궁화마을, 태극마을, 열목어마을 등 8개 마을은 자신들만의 특화된 맥주를 빚으며, 앞으로 농촌 체험을 위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양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렇게 마을 단위로 소규모 양조시설을 갖추고 맥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자연스레 홍천에 ‘수제 맥주의 고장’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리라는 것이 권 대표의 생각이다.

권 대표는 최근 소규모주류면허를 신청한 상태다. 온전한 맥주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선 맥주양조면허를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천군에선 이 프로그램을 위해 일부 시설 지원에 나설 계획이란다.

한편 그의 맥주학교 이름은 ‘농담(農談)’이다. 이름 그대로 농촌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농촌에서 도시의 맥주를 흉내 내어 빚는 맥걸리가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중의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농촌의 이야기를 맥주에 담아 농촌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모습을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생각의 출발점은 무척 오래됐다.

20세기 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산으로 뗏목을 띄워 ‘발해항로’를 찾아 나섰다가 4명의 선배와 후배를 바다에 묻은 이후 일산과 안동에서 농부의 길을 나섰고, 지난 2016년 홍천에 터를 잡은 이후 줄곧 그의 생각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농촌이라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맥주의 나침반은 도시를 향하지 않고 농촌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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