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문화로 만들고 싶어 정선군 설득해 아리랑브루어리 설립
홉향 강조하기보다 몰트맛 살려 음용감 뛰어낸 맥주 6종 생산

▲시인이자 경영인인 정선 아리랑브루어리 윤기목 대표가 자신의 시집을 앞에 두고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있는 병맥주들이 이 양조장의 제품들이다.
▲시인이자 경영인인 정선 아리랑브루어리 윤기목 대표가 자신의 시집을 앞에 두고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있는 병맥주들이 이 양조장의 제품들이다.

자칭 ‘인문공학도’다. 시인으로 등단해서 두 권의 시집을 냈는데, 직업은 식품 관련 회사를 3개씩이나 운영하는 공학도 출신 경영자라서 그리 소개한단다. 친구들은 어찌 두 일을 그리할 수 있냐고 묻지만, 정작 본인은 오히려 한 곳에 집중했다면 삶이 재미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농축과 추출 기능을 가진 식품설비업에서 출발해 2000년경 IMF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잼을 만드는 식품회사를 만들고, 2016년에는 맥주 양조업에도 도전하고 있는 강원도 정선에 자리한 아리랑브루어리 윤기묵 대표(59)의 이야기다. 식품공학을 전공했다는 윤 대표의 입장에서 3개의 공장은 모두 유사한 기술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일이야 그렇다 치지만, 회사 경영을 하면서 심지어 맥주 양조도 직접 하는 가운데 시까지 쓰고 있으니 친구들의 질문은 당연했을 듯하다.

그런데 윤 대표와의 인터뷰 내내 느껴지는 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충분히 그를 ‘인문공학’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영역으로 인도했을 듯싶다. 특히 정선 땅에 맥주 양조장을 설립하는 과정은 그의 인문적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표가 맥주 양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펩시콜라에 살균기를 납품하면서부터다. 지난 2008년 펩시의 공격적인 아시아 마케팅이 펼쳐지는 기간 동안 윤 대표는 펩시의 협력사가 되어 독일의 크로네스사를 자주 방문하게 된다. 크로노스사는 대표적인 독일의 양조설비업체다. 당연히 독일 출장이 많아졌고, 그곳에서 유명한 양조장은 물론 펍을 방문하게 된다.

크로네스의 본사는 뮌헨에 자리 잡고 있어 유럽의 명사들이 방문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는 4~500년쯤 된 펍에서 그곳 사람들은 일상에서 맥주를 문화처럼 마시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윤 대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베토벤이나 헤밍웨이 등이 앉은 자리는 뒤에 찾는 이에게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재생산되고 있었고, 결국 “술이 진화하면 이렇게 문화가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망치처럼 자기 머리를 때렸다고 한다.

 그 뒤 자신의 생각을 정선군 공무원들에게 꺼낸 것이 발화점이 됐다. 지역의 문화를 일굴 수 있는 양조장을 만들면, 그 스토리텔링을 따라 더 많은 사람이 정선을 찾게 될 것이라는 인문적 시각은 수제 맥주 양조장으로 더욱 구체화 됐다.

이야기가 물어 익는 시점은 지난 2016년이다. 당시 정선군은 농림부 공모사업으로 70억 원가량의 지역 투자 예산을 확보하고 있었다. 스토리텔링을 담은 양조장 프로젝트는 정선군 공무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부지 조성 및 브루어리 건설을 위한 비용을 대기에 이른다. 여기에 자기 돈을 들여 장비를 도입해 현재의 양조장이 만들어진다.

▲정선에 있는 아리랑브루어리는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 최초로 해썹 인증을 받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윤기목 대표가 양조장 내 발효시설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정선에 있는 아리랑브루어리는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 최초로 해썹 인증을 받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윤기목 대표가 양조장 내 발효시설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양조장 건설부터 오픈까지 2~3년 동안 윤 대표는 맥주 레시피를 준비하며, 100리터급 파일럿 장비로 50여 차례가 넘는 시험양조를 하게 된다. 식품공학을 전공했지만, 맥주 양조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1년간 장비를 셋팅하며 자신의 양조기술도 담금질하듯 벼뤘다. 수제 맥주 양조장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해썹 인증을 받은 양조장은 이렇게 시험양조 기간을 거쳐 2018년에 문을 열게 된다. 

아리랑브루어리의 맥주는 도시 맥주보다 순하다. 홉향을 강조하기보다는 몰트맛에 기준을 잡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윤 대표 스스로 강한 홉향은 거푸 마시기 힘들다며 고소한 맛을 아리랑브루어리 술맛의 캐릭터로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윤 대표의 시집 《외로운 사람은 착하다》에 실려 있는 ‘아리비어’라는 시에는 다음의 대목이 등장한다. 

“인생의 쓴맛에 비하면/맥주의 쓴맛은 쓴맛도 아니지만/그래도 세상 쓴맛을 안다는 사람들이/이 맥주의 풍미를 마시면/독하게 쓴맛도 별것 아니라고/인생의 쓴맛도 이 맥주 거품 같을 거라고/입 한번 닦으면 사라질 고통일 거라고”말하며 “그런데 쓴맛이 강한 맥주일수록/목 넘김이 부드럽고/내 입맛에는 왜 이리 달콤한가”라고 쓰고 있다. 시판하는 라거맥주와의 비교단상일게다.

현재 아리랑브루어리에서 판매하는 맥주는 6종이다. ‘아리랑’과 ‘아랏차’ 두 종의 IPA와 ‘동강에일’, ‘곤드레필스너’, ‘마인스타우트’ 등 강원도와 정선을 담는 이름을 사용한 맥주와 자신의 성을 딴 ‘윤바이젠’까지 모두 그의 시처럼 목 넘김이 부드럽고 달콤한 맥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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