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꽃비의 대명사는 산돌배나무가 원조, 벚나무는 최근 트렌드
배의 주요 산지는 북쪽 지방, 분단 이후 나주·안성배 유명세 떨쳐

산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가 돌배나무다. 산사에도 돌배나무가 자주 보이는데, 실한 열매를 맺는 돌배나무는 과일공양에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진은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우뚝 서 있는 돌배나무.
산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가 돌배나무다. 산사에도 돌배나무가 자주 보이는데, 실한 열매를 맺는 돌배나무는 과일공양에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진은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우뚝 서 있는 돌배나무.

연한 분홍빛을 띤 산벚나무와 진분홍 복사꽃과 경쟁하며 새하얀 꽃을 피우는 배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봄꽃 나무들보다 조금 늦게 산을 찾는 돌배나무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나무는 하얀 물감을 뒤집어쓴 듯 고고하게 자존감을 드러낸다.

산속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돌배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배나무보다 딱딱하고 작은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돌배나무다.

어른 주먹만 한 배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돌배나무를 영주 부석사에서 만났다.

소백산맥을 품은 풍경 하나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주는 부석사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말이다.

돌배나무도 소백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는 듯 우뚝 서서 산이 꼬리를 물고 이어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무 아래는 잘 익은 배들이 떨어져 있고, 가지는 돌배로 가득하다.

돌배의 크기는 보통 아이들의 주먹만 하지만, 부석사의 돌배는 무척 크다. 제사나 잔칫상에 올려도 될 만큼 크다. 빛깔도 탐스럽다. 

지금은 개량종 참배가 제사상에 오르지만, 원래 우리가 즐겨 먹던 과일은 이 돌배나무의 열매다.

달빛이 흘러 배꽃에 내려앉은 모습을 보고 이조년이 쓴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에 나오는 ‘이화’도 그렇고, 봄철 비처럼 뿌려지는 ‘이화우(梨花雨)’도 모두 돌배나무의 것이다.

요즘은 벚나무의 꽃이 지는 것을 꽃비에 비유했지만, 그래서 ‘벚꽃엔딩’에 낭만적 서사를 담아냈지만, 돌배나무가 지천이던 시절은 꽃비의 대명사는 돌배나무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문학에는 ‘이화우’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 명종 때의 부안 기생 매창이 연인인 유희경에게 남긴 시에도 ‘이화우’가 나온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돌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도 소백산 줄기를 바라보듯 앞마당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어른 주먹보다 큰 돌배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돌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도 소백산 줄기를 바라보듯 앞마당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어른 주먹보다 큰 돌배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

“이화우 흩날릴 제/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날을 생각하는가/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

돌배나무 중 특별하게 대우받던 돌배는 ‘청술레’라는 열매를 맺는 청실배나무다. 열매의 색깔이 파란색을 띠고 있으며 물기가 많고 달다고 한다.

돌배보다 훨씬 좋은 식감을 가진 청술레는 《춘향전》에도 등장한다. 이도령과 춘향이의 첫날밤을 위해 월매가 준비한 주안상의 안주 중 하나로 말이다.

이야기 속 주안상이어서인지, 둘이 먹기에는 너무도 많은 술과 안주가 등장하는데, 갈비찜, 제육찜, 숭어찜, 생치(꿩 가슴살 육회), 냉면, 염통 산적, 대전복, 생율과 숙율, 그리고 ‘앵두탕기 같은 청술레’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이 안주에 따라 들어온 술들도 다채롭다. 포도주와 자하주, 송엽주, 과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 화주, 연엽주 등 열거한 술들을 한 잔씩만 마셔도 첫날밤은커녕 숙취에 빠져 잠이 들 것 같다.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돌배나무 중 청술레 외에 ‘문배’라는 나무가 있다. 갸름하고 꼭지부분이 뾰족하며 단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문배의 향을 가진 술이 하나 있다. 조, 수수, 밀 등을 발효시킨 술덧을 증류한 술로 ‘문배주’라고 불린다.

재료에서 알 수 있는 이 술은 쌀을 중심에 두고 술을 생각하는 남쪽 지방의 술은 아니다.

평안도 지방에서 전승되던 술로 1951년 한국전쟁 기간 중 남쪽으로 피난 내려온 고 이경찬 씨에 의해 서울로 내려오게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름 때문에 흔히 문배를 넣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붕어빵 안에 붕어가 없듯이 문배주 안에도 문배는 없다.

하지만 그 향기에 매료됐던 사람들은 문배주를 으뜸으로 여겼고, 그래서 이 술은 지난 1986년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등재된다.

돌배는 차로도 음용하는데, 만해 한용운이 1920년대에 쓴 〈해인사 순례기〉를 보면 “환경이란 스님은 가을에 돌배를 따두었다가 즙을 내어서 그릇에 넣고 밀폐해 공기가 통하지 못하게 두었다가 차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 차의 이름은 돌배라는 이름을 따서 ‘석차(石茶)’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배나무의 고향은 추운 북쪽 지방이란다. 요즘 배의 대표 산지를 꼽자면 나주나 안성을 치지만, 옛날에는 봉산, 함흥, 안변, 금화, 평양 등 대부분 북한 지방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분단 이후 우리가 북한 지역의 배를 맛볼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또 하나 잊혀 가는 배나무가 하나 있다.

지금은 남양주 등으로 배밭이 밀려났지만, 중랑천 넘어 태릉 일대는 대표적인 ‘먹골배’ 산지였다.

이 배가 앞서 말한 청실배라고 한다. 푸른 빛을 띤 청실배의 넘쳐흐르는 과즙과 진한 단맛을 어쩌면 이제는 추억 속에서 그려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점점 외래 품종과 개량종에 토종이 사라지는 세상이 안타깝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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