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건강에 따라 술 제조법 바꾸었던 조선 왕가의 술
서울시 무형문화재 박현숙 장인 손에서 문화로 살아나

조선시대 궁궐의 술은 ‘향온주’였다. 녹두를 누룩으로 만들어 향기롭게 빚은 술이다. 지금은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2대째 박현숙 장인의 손에서 향온소주는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달초 서울시 무형문화축제의 일환으로 태권소년 파비앙씨와 향온주 술빚기를 이야기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술은 ‘향온주’였다. 녹두를 누룩으로 만들어 향기롭게 빚은 술이다. 지금은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2대째 박현숙 장인의 손에서 향온소주는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달초 서울시 무형문화축제의 일환으로 태권소년 파비앙씨와 향온주 술빚기를 이야기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술을 빚는 누룩 중 녹두를 사용해서 빚는 누룩을 향온곡이라 한다.

녹두는 해독 기능을 가진 곡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누룩보다 더 귀히 여기던 누룩이며, 통밀을 분쇄해서 만드는 일반 조곡보다 훨씬 만들기도 까다롭다.

이유는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잘못 빚으면 쉰내가 나는 등 재료 자체가 민감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로 빚어낸 향온곡으로 빚은 술은 이름 자체에서 드러나듯 향기가 기가 막힌 술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술이 ‘서울 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동 하면 ‘안동소주’가 떠오르고 서천 하면 ‘한산소곡주’가 생각나지만,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서는 대도시 서울의 술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는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유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온주는 고려 때부터 만들어 왔던 오랜 역사를 지닌 술이며, 조선 500년 왕조의 궁궐 술로 자존감을 유지해온 최고의 술이었다.

또한 지금은 서울시의 무형문화재(제9호)로 지정되어 서울 술 문화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는 술이기도 하다.

현재 이 술은 2대째 무형문화재를 이어 오고 있는 박현숙(70)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향온주는 다양한 고조리서에 등장한다.

《고사촬요》 《규곤시의방》 등 13개 정도의 책에서 등장하며, 내용은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향온주에 대한 기록이 차이가 나는 것은 궁궐의 중심 술이었기 때문이다. 연회는 물론 각종 제례 의식 등에서 상당량의 술을 써야 했던 궁에선 외부 술을 사들이지 않고 직접 빚어서 사용했다.

이유는 왕의 술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수라는 기미상궁을 통해 독의 유무를 확인했지만, 술은 직접 따라 마셨기 때문에 기미를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독살 등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외부의 술은 일절 금했다.

그런 까닭에 왕의 술은 술을 빚을 당시 임금의 건강 상태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바뀌었다.

궁궐의 술인 향온소주는 숙종 때 인현왕후가 폐비되어 유폐되면서 외가인 하동 정씨 가문에 전해진다.  2대째 향온소주장인 박현숙 씨는 육류 안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며, 특히 생갈비 등의 안주를 곁들이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사진은 향온소주의 주안상 사진이다.
궁궐의 술인 향온소주는 숙종 때 인현왕후가 폐비되어 유폐되면서 외가인 하동 정씨 가문에 전해진다. 2대째 향온소주장인 박현숙 씨는 육류 안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며, 특히 생갈비 등의 안주를 곁들이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사진은 향온소주의 주안상 사진이다.

술의 성격이 왕의 부족한 기운을 돋우거나 병을 다스리기 위한 약주로 빚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듯 술도 빚을 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술의 이름은 ‘향온주’ 하나이지만, 제조법은 매번 달랐고, 고조리서에 담긴 내용도 그렇게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만든 향온주는 어주(御酒)였다. 즉 임금이 마시는 술이기도 했지만, 임금이 왕실 종친들과 공신 등에게 하사품으로 보낸 술이기도 했다.

어주의 흔적은 해남윤씨 녹우당의 은사장 기록에도 남아 있다. 효종의 스승이었던 윤선도는 인조와 효종으로부터 자주 선물을 받았는데, 당시 받았던 선물 중에 향온소주도 들어 있었다.

한번 선물로 보낼 때마다 기준이 5병이었으니 전체 양을 합치면 내의원에서 빚은 술은 상당한 양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 등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사용하던 만찬주이기도 했으며, 북경으로 가는 사신단에 진헌품으로 보냈기 때문에 품질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인 술이기도 하다.

궁궐의 술은 내의원에서 관리했는데 내시 중 서열 3위에 있던 상온(尙醞)이 그 책임을 맡는다.

상온이 관리하는 사람은 주인(酒人)과 주모(酒母)들이며, 모두 술을 빚는 남자와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주로 장마철의 고온다습한 날씨에 누룩을 빚는데, 궁궐에서 누룩을 빚을 때는 전국에 방을 부쳐 민간에서의 누룩 제조를 금지하였다.

즉 좋은 술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누룩마저도 철저히 관리해 술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품질의 술을 내기 위해 상온서에 술 숙성실을 별도로 두고 일정한 기간 술을 숙성시켰다고 한다.

이런 이력을 지닌 향온주가 왕궁을 벗어나 사가에서 빚어진 것은 숙종 임금과 장희빈, 그리고 인현왕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궁궐 내에서의 권력 다툼의 과정에서 노론이 집권에 실패했던 시절, 인현왕후는 폐위되어 사가에 8년간 유폐된다.

이 시기 인현왕후의 외가인 하동 정씨 집안에 이 술이 전파돼 인현왕후의 외할머니를 통해 집안의 술로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하동 정씨 집안의 술로 내려왔던 술이 되살아나게 된 것은 1993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되면서부터다.

1대 장인은 고 정해정씨. 그리고 2대째 향온주장은 박현숙씨가 이어가고 있다. 박현숙 장인은 멥쌀로 3양주를 빚어 알코올 도수 42도의 소주로 내려 술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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