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넘는데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있다. 고생한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속담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정부가 잇따라 정책금융을 추진하면서 부담은 카드사들이 지는데, 이로 인한 효과는 정책 성과로 포장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카드사들에게 햇살론 카드라는 숙제를 안겨줬다. 햇살론 카드는 저신용자에게 신용카드 이용을 지원하는 카드다. 개인신용평점 하위 10%인 최저신용자 대상 카드이다보니, 연체시 리스크를 카드사가 짊어지게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려가 가중되자 금융위는 햇살론 카드가 서민금융진흥원의 보증을 통해 발급되는 카드이기에 카드사들에게 손해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연체료에 대한 보증이나 건전성 악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햇살론 카드 이용자가 결제금액을 연체하면 카드 사용이 중지되고, 연체가 3개월이 지속되면 카드사는 서금원의 변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용금액에 대한 변제만 이뤄져 연체료를 받지 못할 수 있고, 상환하지 않는 이용자가 속출할 경우 건전성 악화와 충당금 적립은 카드사의 몫이다.

게다가 보증도 사실상 카드사의 돈으로 이뤄진다. 금융위는 지난달부터 금융사들에게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정책서민금융 재원으로 걷고 있어, 카드사들은 자신의 출연으로 최저신용자를 보증하게 되는 셈이다.

앞서 재난지원금 등 정책금융 지원 때에도 카드사들은 적자와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무리한 업무 추진에 정책 시행이 미뤄지기도 했다.

상생소비지원금 때 정부는 8월에 해당 안을 마련하고, 9월부터 시행할 것을 카드사에게 요구했다. 구체적인 가맹점 지점과 시스템 구축도 안된 상태였다. 부랴부랴 카드사들이 사전 작업에 나섰으나, 전산 구축 등의 문제로 9월 시행이 무산되고 10월부터 시작됐다.

외식지원금 때도 마찬가지다. 세부적 준비 없이 추진된 정책 탓에 카드사들은 급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외식지원 사업은 종료 때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당국은 종료 시기 불과 며칠 전에 예산이 떨어졌으니 사업을 종료하라 전달했고 뒤처리는 카드사들 몫이었다.

이어지는 정책적 희생에 카드사들은 연일 쓴웃음이다.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한다는 데 반대하면 안 좋게 비칠 것이고, 참여하게 되면 현실적이지 못한 업무 추진에 민원 발생 등 부담만 가중되는 실정이다.

적절한 보상이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달 말이면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작업이 마무리되는데, 또 한 번의 인하가 예상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의 명분도 영세한 가맹점일수록 수수료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공익적인 이유다.

카드사들은 지난 2007년부터 총 13번의 수수료율 채찍질을 겪었다. 공익을 위해 추진되는 정책이더라도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됐고 손실이 발생했다면, 가끔은 당근을 주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연이은 채찍질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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