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부임 후 93개 CEO메시지 배포
A4 3~4매 분량 직접 작성…공동의 목표전달

2022년 9월 22일 17:12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손해보험사 메리츠화재가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100주년의 끝자락에서 ‘만년 5위’ 메리츠화재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금융신문은 지난 7년간 100년 기업의 키를 잡아온 김용범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이 어떤 소통 방식으로 혁신 DNA를 주입했는지 되짚어본다.

김용범 부회장은 2015년 1월 메리츠화재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매월 ‘CEO메시지’를 작성했다. CEO메시지는 대표이사가 소속 임직원 모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다. 그는 매월 사업의 목표와 성과를 공유하고 공과 과를 언급한다.

김 부회장 부임 전까지 CEO메시지는 사내방송으로 진행됐다. 김 부회장은 방송보다 글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화면과 음성으로 전달하는 내용은 전 직원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부임 후 ‘아메바경영’으로 압축되는 김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이달 현재까지 93개의 CEO메시지를 통해 전 직원에게 전파됐다.

A4용지 3~4장 분량의 CEO메시지는 김 부회장이 직접 작성한다. 경영관리파트는 월별로 바뀌는 사업성과를 숫자로 보고할 뿐이다. 실적은 장기인보험을 시작으로 전속(TA)·대리점(GA)·텔레마케팅(TM) 등 채널별 매출, 장기위험손해율, 자동차보험, 기업보험, 투자수익률 순서로 나열된다. 이를 통해 회사가 우선순위로 삼는 부문별 손익이 임직원에 고스란히 공유된다.


디테일한 지시와 방향성의 공유


최근 손보사의 화두는 ‘3·5·5’ 유병자보험이다. 기존 ‘3.2.5’보다 가입자의 고지의무를 축소한 만큼 보험료가 저렴하다. 대신 보험사 입장에선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 가입자를 받게 된다. GA시장에서 ‘3.5.5’가 인기를 끈 것도 다르지 않다. 표준체(건강한 사람)대비 10~15%의 보험료만 더 내면 유병력자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이란 점이 인기요인이었다.

보험료가 저렴한데 위험군을 인수하면 손해율(거둔 보험료 내비 나간 보험금)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메리츠화재가 지난달 ‘3.5.5’ 유병자보험을 판매중지한 배경이다. GA매출이 절대적인 회사에게 쉬운 선택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럴 땐 CEO의 결정이 필요하다. 보험사에서 특정 판매채널 임원이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영업행위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김 부회장은 직접 ‘디테일’을 챙긴다. ‘전문경영인이 모든 부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다’는 메시지는 조직의 부서 이기주의를 방지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도록 한다. 김 부회장은 부임 당시 ‘두더지 잡기’라는 표현을 통해 공동목표를 저해하는 행위를 경계했다.

 


‘33플랜’, 달성 가능한 목표치의 현실화


김 부회장은 지난 2015년 4월 1차 목표를 제시했다. ‘3년 후 시가총액으로 업계 3위를 달성한다’라는 일명 ‘33플랜’이다. 5위에서 3위 손해보험사로 도약하자는 다짐이었다. 지난 2015년 말 1700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말 6600억원으로 네 배가량 성장했다. 시가총액은 1조7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현재는 당기순이익 3위 손보사라는 인식을 공고히 하고 있지만, 시가총액 측면에서 살펴보면 달성 가능한 목표치를 향한 치열한 경주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말 메리츠화재의 ROE는 24.7%였다. 수익성 지표인 ROE가 20%대를 기록하는 보험사는 사실상 없다. 철저하게 수익성을 챙길 수 있는 장기인보험 중심의 매출증대 전략과 수익성 없는 상품의 디마케팅, 빠른 신시장 진입과 더 빠른 적자시장 탈출 등은 메리츠화재의 대표적 수익 중심 경영이다.

적극적 주주환원 정책도 한몫했다. 국내 금융주는 사실상 배당을 제외하면 특별한 매력을 찾기 힘들다. 자사주 매입이 소각을 통한 주당순이익(EPS)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다. 그룹사 입장에서 주가를 너무 띄우는 것도 경영승계 등에 부적합하다. 시가총액보다 부동산 가치가 높은 금융사도 존재하는 이유다.

시장에 유통되는 발행주식수를 줄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건 글로벌 상장사의 방식이다. 메리츠화재는 이러한 정책 변경이후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총 5600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다. 지난해 말 주주 환원율(총배당액+자사주 매입액/당기순이익)은 50%를 웃돌고 있다. 33플랜의 달성은 금융사 주식의 허점을 적극 파고든 결과로도 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CEO메시지는 목표치를 현실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성공경험을 공유하는 매체 역할을 했다. ‘넥스트 33플랜’이 공개된 건 지난 7월이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에서 나온 첫 중기계획의 방향성인데, 이제는 내부뿐만 아니라 메리츠화재를 바라보는 시장의 의구심도 걷히는 모양새다.


‘야수적 혁신’ 대표되는 공격 일변도


김 부회장이 CEO메시지를 통해 강조하는 대표적인 문구를 꼽자면 ‘야수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압도적인 1위’, ‘성장에 대한 분투’, ‘차고 넘칠 정도의 영업력’, ‘극단적 합리주의’ 등의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격 일변도를 강조하는 김 부회장의 철학은 분명한 표현으로 전사에 공유된다. 

지난 2018년과 2019년은 메리츠화재가 장기인보험과 전속설계사 숫자에서 첫 1위를 달성한 해다. 목표를 달성한 시점에도 김 부회장은 CEO메시지를 통해 오직 공격만을 강조했다. 조직에 현상유지를 경계하고, 시장에 냉철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은 현재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CEO메시지에 대한 한 손보사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김 부회장의 소통방식은 어떤 CEO보다도 분명하고, 또 이례적이다. ‘최고경영자가 디테일까지 알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조직은 아주 빠르고 유동적으로 변신을 거듭한다”라고 평가했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박진혁 기자 pjh@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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