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김두철 상명대 명예교수

초인플레이션 표면만 보는 보험산업 경계
오일쇼크 당시 대량의 자본유출 경험해…
위기일수록 대처방식은 극단적이어야


금리인상 기조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를 넘어섰고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1%를 넘어섰다. 미 중앙은행(Fed)도 고강도 긴축을 시사하면서 자이언트 스텝(0.75% 인상)을 넘어 울트라 스텝(1.0%)까지 저울질하고 있다.

통상 금리인상은 고금리 부채에 신음하는 보험사에 자산운용수익을 높일 호재로 작용한다. 하지만 최근의 금리는 오르는 폭이 너무 가파르다는 게 문제다. 

김두철 상명대학교 명예교수는 현재 보험산업이 초고금리와 초인플레이션 시대가 미칠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사례를 미뤄볼 때 대량의 계약해지와 자금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역사적으로 초인플레이션 시대일수록 보험회사의 대처방식은 혁신적이며, 극단적이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Q. 현재 보험산업에 닥친 초고금리, 초인플레이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A. 얼마 전까지 초저금리를 경험한 보험회사에겐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시기에 팔았던 상품으로부터의 이차역마진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제로금리’의 공포도 있었지만, 보험산업은 그런대로 잘 버텨왔다. 

단기간일지라도 초인플레이션은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간이 몇 십년간 계속되는 생명보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국내 보험업계가 인플레이션이 산업에 미치는 근본적인 문제를 너무 가볍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언급되는 내용은 물가상승으로 보험금 청구액이 커진다는 정도다. 예를 들면 청구 건수가 많은 손해보험사는 기존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야한다거나, 정해진 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사는 계약가치가 기존보다 하락해 보험 수요가 줄어드는 등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간단치가 않다. 물가상승이 미래에 받을 보험금과 보험계약의 가치를 하락시킨다는 건 먼 미래의 불확실한 예상일뿐이다. 당장의 보험 수요나 계약 유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Q. 과거 보험산업이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던 때가 있었나. 당시 보험사들에게 닥친 상황은?

A.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걸쳐 발생한 오일쇼크 여파는 급격한 금리인상을 야기했다. 당시 보험회사는 가격경쟁력 하락, 자금유출 현상, 그리고 신규판매 부진 등 3중고로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 

먼저 무배당계약의 가격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금리가 높아지면 보험사의 투자수익이 늘어나지만, 이 혜택을 돌려줄 방법이 계약자배당금 말고는 없다. 당시 미국의 법률상 무배당계약만을 취급하도록 규정된 주식회사는 타 금융권과 비교해도 상품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보험회사의 돈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보험계약자는 높아진 금리를 반영해 만들어진 다른 금융기관의 상품을 구매하고자 보험회사로부터 자금을 인출하기 바빴다. 예전의 낮은 예정이율을 기준으로 대출이율이 정해지는 계약대출을 활용하거나, 보험계약을 해지해 투자자금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금융기관의 높은 수익률에 가려져 신규판매가 부진해지고 계약유지율이 악화됐다. ‘장기간 보증된 수익률과 안정적인 보장 제공’이라는 생명보험상품의 장점이 다른 금융상품의 높은 수익률에 가려졌던 거다.

Q.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보는지.

A. 고금리가 되면 일시적으로 시중금리가 예정이율(보험료를 산출할 때 사용하는 이율. 높을수록 보험료는 저렴해진다.)을 역전한다. 이로 인해 낮아진 보험상품의 가격경쟁력으로 신규 판매가 위축되고 계약해지가 늘어나는 등 다른 금융상품보다 상당히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보험사보다 이율변동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다른 금융기관으로의 자금유출이 당면한 문제다. 지난해까지 생명보험 가입자가 보유한 상품의 예정이율은 1~2% 내외다. 여기에 법으로 1~2% 정도로 제한된 가산금리를 붙이더라도 4% 수준이면 보험계약대출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대체 투자상품이 시장에 쏟아진다면 보험계약해지로 생긴 환급금이나 보험계약대출금이 다른 투자상품에 유출되는 현상은 매우 가시적이다. 근래에 저금리로 보험료가 상당히 오르며 계약감소를 겪었던 보험사가 이젠 역성장과 기존계약의 해지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Q. 과거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보험회사들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나. 

A. 오랫동안 지탱해 온 생명보험의 정의나 보험료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험의 기능을 단순한 위험보장 이상으로 확대하는 시도를 했다. 또 법률상으로 판매상품과 관련된 주식회사와 상호회사를 구분하는 규제를 없애 주식회사도 배당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먼저 보험료에 하나로 뭉쳐있다고 믿었던 저축과 보장의 요소를 각각 따로 분리(unbundling)해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입자가 납입한 보험료를 △보장의 제공(위험보험료) △보험금 재원의 적립(저축보험료) △보험회사의 제반비용(부가보험료) 등의 기능으로 나눠 계약자에게 알려주는 식이다.

다른 금융상품과의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무배당상품이면서 배당상품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유형의 상품도 개발했다. 대표적으로 처음부터 보험료 등을 확정하지 않은 ‘현행예정율(current assumption) 생명보험’이다. 보험사가 추가로 얻은 자산운용수익 등을 계약자배당금의 형태로 돌려주는 것이 아닌, 매번 보험료를 그만큼 깎아주는 형태다. 

Q. 장기간 정해진 보험료를 내고, 정해진 보험금을 받는 전통적인 형태의 보험논리가 깨졌던 모습이다. 투자 등 확대된 기능을 갖춘 생명보험이 다시금 보험산업을 성장시키리라 전망하는지.

A. 보험회사로부터 자금이 이탈하는 현상은 보험상품과 금융상품과의 직접적인 경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효율적인 경쟁을 위해선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보험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보험상품도 기존의 안정적인 수입과 보장을 제공하는 역할 이외에 복합적인 금융상품으로의 탈바꿈이 필요하다. 변액보험, 유니버설보험, 현행예정율 종신보험, 불확정보험료보험 등 새로운 유형의 상품이나 기존상품의 변혁은 계속된다. 예를 들면 변액보험에서 사망보험금의 최저보장을 해주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 정도다. 계약자적립금에 대한 최저보장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초인플레이션일수록 대처 방법이 더 극단적이어야 한다. 보험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페러다임의 전환을 유도해 산업의 영역을 확대하는 쾌거를 이뤄야한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