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문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 연구위원 / SN경영연구원장 / 경영학박사

기축통화인 달러 보유국, 미국의 기준금리 변화는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지구촌의 금리, 환율,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FED(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 추세를 지켜보노라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한동안 전 세계가 양적 완화 정책을 펼쳤고, 미국만 해도 2년 동안 제로금리를 유지한 결과 엄청난 양의 통화가 시중에 풀렸으며, 그에 따라 물가의 고삐가 풀려 인플레이션 광풍에 휩쓸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입을 주시한다. 한데도 그는 인플레이션 조짐이 확연했던 2022년 초까지는 이를 무시했다. 그러다가 그해 3월부터 무서운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빅 스텝(0.5% 인상), 자이언트 스텝(0.75% 인상)을 연달아 밟으며 숨 쉴 틈도 없이 금리를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마침내 올해 3월엔 기준금리 상단이 5%에 도달했다. 한국과는 무려 1.5% 포인트 차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당연히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다. 고금리 폭탄을 맞은 세계 증시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다우와 S&P500 지수는 2022년 한 해에 각각 8%와 20%가량 하락했다.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33%나 추락했다. 한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총의 25%가 사라졌다. 다른 나라들도 다를 게 없다.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무리하게 금리를 인상한 결과다. 이 대목에서 연준의 책임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무리한 금리 인상의 후유증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고용지표를 비롯한 각종 지표는 경기침체(혹은 정체)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연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1년 넘게 매파적 행보를 지속해왔지만, 경기침체 조짐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연준의 일부 강경파 위원들은 여전히 금리를 추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R의 공포’가 밀려온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앞으로 5년간 세계경제성장률이 3%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33년 만에 최저치다. 그는 경제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금융 부문의 위험이 늘어난 것을 지목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 외국 투자은행들은 “한국은 1%대의 성장도 쉽지 않다”라고 진단한다. 심지어 노무라증권 같은 곳은 한국 경제가 올해 뒷걸음질 칠 것으로 전망했다. 

연초(年初)까지만 해도 경기침체(Recession)는 아예 오지 않을 거라는, 이른바 노랜딩(no landing)을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엔 그런 주장들이 슬며시 사라졌다. 대신에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본격적인 침체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적어도 노랜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사이의 공통된 의견(consensus)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구촌 곳곳에서 경기침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각국이 예의 주시해야 할 변화다. 물론 필요하면 당국이 정책을 통하여 시장을 선도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을 이기려 들지는 말아야 한다. 특정 사태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분명한 현상을 외면하고 잘못된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데도 고집스러운 당국자들은 종종 그 점을 무시한다.

대한민국의 경기 전망은 한층 비관적이다. 오랫동안 우리 경제의 효자 노릇을 하던 반도체는 최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잔뜩 기대를 모았던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도 생각보다 미미하다. 작년부터 계속된 수출 부진으로 인한 무역적자는 쉽사리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비와 투자, 기업활동의 위축은 곧바로 세수 감소로 이어진다. 개인이나 나라 할 것 없이 닥쳐오는 위기 앞에 대책 없이 노출된 형국이다.

불확실성 시대에서 살아남기

이런 가운데 미국은 여전히 금리 인상 기조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를 우려한 여러 나라에서 금리를 내리거나 인상을 멈추는 피벗(pivot)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몇몇 국가의 중앙은행은 이미 금리 인상을 중단했다. 세계 증시 또한 일찌감치 피벗을 예상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중이다. 연준의 정책을 불신(不信)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별한 상황 변동이 없는 한 이런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 현실은 자못 심각하다.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경제 지표는 바닥에서 탈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이러저러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들의 예측은 맞을 때보다 틀린 경우가 더 많다. 이럴 때가 위험하다.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끼면 두려움에 빠지기 쉽다. 자칫 탐욕과 조급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십상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정한 위기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실체보다 더 무서운 게 잘못된 인식이고, 현상보다 훨씬 위험한 게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이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현격히 달라진다. 그러니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평정심을 잃지 말고 냉철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난관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불확실성이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점점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생존하기 어렵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세상은 여전히 우리가 살만한 곳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