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속살 만날 수 있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코스
털개회나무·개다래나무 백화현상 등 눈요기도 많아

▲ 경남 함양에서 전북 남원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7암자길은 총 16km가 넘는다. 해뜨기 전에 길을 나서 상무주암(사진)에 도착할 때 쯤 되면 아침을 훌쩍 넘기게 된다. 암자를 사진에 담을 수 없어 담장밖에서 바라본 모습을 찍었다.
▲ 경남 함양에서 전북 남원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7암자길은 총 16km가 넘는다. 해뜨기 전에 길을 나서 상무주암(사진)에 도착할 때 쯤 되면 아침을 훌쩍 넘기게 된다. 암자를 사진에 담을 수 없어 담장밖에서 바라본 모습을 찍었다.

2024년 06월 24일 13: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큰 산은 마음이 먼저 빗장을 걸어 잠가 좀처럼 찾지 않게 된다. 걷는 거리와 높이 그리고 연이어지는 오르내림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탓이다. 그러다 ‘지리산7암자길’을 찾아 나서게 됐다.

1년 중에 오직 하루만 산문을 여는 암자가 있어서 ‘초파일’에나 이 길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거리는 16km 정도다. 부담스러운 거리였지만 지리산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무박 산행을 단행했다. 7암자길의 초입은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7개의 절과 암자를 들르면서 물을 보충할 수 있고, 밥때에는 절집의 공양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새벽 3시40분경 경남 함양의 음정 마을에서 시작한 산행은 해발고도 1165m에 있는 도솔암에 이르기까지 급한 경사지를 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한꺼번에 몰린 등산객으로 병목 현상이 빚어져 급경사의 오르막을 숨을 돌리며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길의 첫 구간은 어둠 속에서 산의 속살을 확인하며 걸어야 한다. 불빛에 비치는 둘레가 두세 아름쯤 되는 소나무의 위용에 놀라며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어느새 오르막의 끝에 닿는다. 그리고 해 뜨는 시간이 다가오면 더는 불빛의 도움도 필요 없게 된다. 눈을 뜬다는 것은 전체 사물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로소 지리산의 윤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은 두 배가 된다. 

이렇게 시작한 순례는 도솔암(1165m) -영원사(895m)-삼정산 정상(1182m)-상무주암(1162m)-문수암(1060m)-삼불사(990m)-약사암(560m)-실상사(330m)로 대단원을 맺게 된다. 걸음이 빠른 사람은 6~7시간 정도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산에서 만나는 나무와 눈을 마주치다 보면 시간은 훌쩍 8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이번 7암자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무뚝뚝하면서도 정을 감추지 않는 상무주암의 노스님이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얼굴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거사님들을 통해 일일이 타 마실 수 있게 내놓은 커피와 새벽에 갓 쪄서 지게로 져 올린 떡 인심을 보며 스님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가져간 식량이 따로 있었지만, 절집을 들를 때마다 내어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종교가 지닌 뜻을 직접 체험키로 했다. 

이와 함께 산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나무도 암자길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깊은 산인 만큼 수종도 다양하고 이름을 미처 알지 못하고 만나는 나무도 지천이었다.

▲ 길을 걷다가 만나는 자연의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 없다. 개나래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는 없으나 최근 약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 개나래나무는 곤충을 부르기 위해 나뭇잎을 하얗게 만든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나무의 비책이다.
▲ 길을 걷다가 만나는 자연의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 없다. 개나래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는 없으나 최근 약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 개나래나무는 곤충을 부르기 위해 나뭇잎을 하얗게 만든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나무의 비책이다.

도솔암에서 영원사로 걸으며 해발 1100m 정도에서 만난 털개회나무, 상무주암 담장 밖으로 보이는 깔끔하게 전정이 돼 있는 아름드리 잣나무, 문수암을 지나 삼불사로 가면서 만난 백화현상에 예쁘게 이파리를 하얀 꽃처럼 치장한 개다래나무 등을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또한 삼불사에서 보이는 반대편 언덕에 큰 키로 자란 층층나무 군락의 흰색 꽃차례를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남원 땅으로 넘어와 계속되는 지루한 하산길을 걸으며 만난 때죽나무의 별모양 낙화 퍼레이드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고산지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털개회나무와 개다래나무의 백화현상은 서울 근교 산행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림이다.

털개회나무는 라일락의 토종이라고 보면 된다. 수수꽃처럼 꽃이 핀다고 해서 수수꽃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나무가 미국에서 육종돼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나무이기도 하다.

개다래나무의 백화현상은 번식을 위한 식물들의 노력이 어디까지 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현상이다. 어떻게든 수분을 도와줄 곤충을 불러 모으기 위해 이파리를 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 길에서 만난 인연들을 생각하면, 내년에도 이 길이 걷고 싶어진다. 더 많은 나무와 눈인사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운동은 필수가 돼야 할 것 같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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