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보험금 통계 잘못 준건 맞지만
개발원 검증절차 미흡도 따져봐야 반박
“당국 책임 피하려 계리사 독박” 시선도

2023년 8월 10일 22:02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암 입원비 특약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풀린 보험금 지급 통계를 사용한 생명보험사를 대상으로 제재에 나서는 모양새다. 요양병원 입원은 암의 직접 치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보험금을 삭감해놓고, 보험료를 산출하는 과정에서는 요양병원 입원일수까지 보험금을 전액 지급한 통계를 사용했다는 게 골자다. 

거둔 보험료와 나간 보험금의 합이 같도록 만드는 게 보험료를 산출하는 원칙이다. 보험사가 과거 보험금 지급실적(경험통계)에 삭감 지급했던 입원비를 모두 지급한 것으로 처리하면, 과거 통계의 보험금이 부풀려져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더 비싼 보험료를 내야한다. 

금감원은 올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전체 생명보험사에 암 입원과 관련한 위험률 산출 현황을 제출하라며 전수조사에 나섰다(관련기사: 2023년 8월 10일자 보도, [단독] 요양병원 보험금 안주고 돈 더 받은 생보사, ‘벌금 릴레이’ 예고). 업계는 경험통계를 사용한 최소 11개 생보사에서 제재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암 입원비를 대거 판매한 대형 생보사를 중심으로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지급하지 않은 입원 보험금까지 경험통계에 포함시킨 건 잘못이라 해도, 요율산출기관인 보험개발원에 제출한 경험통계의 검증절차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통상 보험사는 보험상품 개발 시 사용된 위험률(보험료 산출이율)의 외부검증을 보험개발원에 맡긴다. 보험개발원은 전 보험사의 경험통계를 정기적으로 수집하는데, 이제껏 제출했던 경험통계와 상품개발에 사용된 위험률이 맞아떨어지는지 검증하기 위함이다.

생보사들이 억울해하는 건 보험개발원이 작성하라는 양식대로 경험통계를 보냈는데 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느냐다. 보험개발원이 수집하는 암입원 통계에는 요양병원 입원일수를 제외하라는 문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통계를 수집하고, 위험률을 검증하는 과정 모두 보험개발원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문제가 된 암 입원비 특약은 정상 판매됐다.

업계는 금감원이 생보사의 주장을 들어줄 여유는 없다고 본다. 이미 보험개발원의 손을 들어줬던 상황이기 때문. 교보생명 부문검사에 앞서 지난 2021년 4월경 보험개발원에 대한 종합검사(현 정기검사)를 진행했지만 암 입원비 통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일종의 ‘힌트’를 얻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의 요율 검증절차를 문제 삼는 건 자승자박이 된다는 점에서다. 보험개발원이 검증한 요율로 만들어진 보험사의 상품을 최종 승인하는 건 금감원이다. 결국 보험개발원을 제재하면 잘못 검증된 보험상품을 팔도록 허락해준 금감원도 잘못이 된다.

생보사의 잘못 기입된 통계를 모아서 보험개발원이 제작, 배포한 ‘참조순보험요율(참조요율)’로 암입원비 특약을 만든 일부 생보사가 이번 제재 대상에서 빠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참조요율에 대한 타당성 검토와 승인 역시 금감원의 몫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참조요율도 보험사가 잘못 전달한 암입원 통계로 만들어진 건 매한가지지다. 하지만 통계 검증이나 요율 사용까지 문제 삼긴 금감원도 난감할 것”이라며 “이렇다보니 보험사 내부의 최종 요율검증을 담당하는 선임계리사의 관리 책임만 탓하게 되는 결과만 남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생보사의 암입원비 특약의 보험료가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된 건 지난 2021년 진행된 교보생명 부문검사에서였다. 당시 금감원은 △암입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건을 포함하거나 암입원일수를 과다 반영하는 등 약관상 보장하는 위험과 일치하지 않은 암입원적용률을 산출했고 △이러한 기초서류의 내용이 정당한지 여부를 선임계리사가 충분히 확인·검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다음해 흥국생명에 대한 부문검사에서도 같은 사안이 발견됐고 두 회사 모두 1억6000만원의 과태료와 함께 선임계리사 등이 제재를 받았다. 동양생명도 지난해 정기검사를 통해 같은 사안이 발견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금융신문 박영준 안수교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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