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원 예방대책 실행은행 한곳도 없어
돈 되는 펀드․보험 상품 판매에만 급급

 
#경기도 화성에 사는 김 씨(남, 52세)는 어느 날 대출 권유 전화를 받았다. 1금융권 대출이 어려웠던 그는 수화기 넘어 '낮은 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대출을 승낙했다. 해당 대출업체는 김 씨에게 돈을 넣을 통장이 필요하니 A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어 오라고 부탁했다. 통장을 주면 거기에 돈을 넣겠다고 했다. 김 씨는 아무 의심 없이 통장을 만들고 대출업체에게 넘겼다. 하지만 며칠 뒤 김 씨는 경찰서로부터 '대포통장' 개설 및 양도 혐의로 출석요구를 당했다. 대출업체에게 통장과 비밀번호를 알려준 게 화근이었다.

<대한금융신문=전선형 기자, 염희선 기자>최근 '대포통장(불법 차명 통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이 근절대책까지 내놓으며 범죄 막기에 나섰지만 금융사는 물론 소비자도 관심 없는 무용지물 대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한금융신문이 서울시내 은행과 2금융권 금융사를 무작위로 방문한 결과 30여개 중 단 한곳도 '대포통장' 혹은 '통장 양도'와 관련한 설명을 해주는 곳이 없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불법 차명 통장' 근절 대책에 따라 신규 예금계좌개설 시 고객에게 통장(카드)양도의 불법성에 대해 설명하고 고객이 확인․서명하는 절차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은행들은 모두 서식란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뒤 서명만하라고 할 뿐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일부 은행에서는 관련 내용에 대해 묻자 "보이스피싱이 많아져서 새로 생긴 것"이라며 "'설명들었음'에 체크하고 사인하시면 된다"는 무성의한 설명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은행 창구 직원들은 예금통장을 만들 때 예금통장 설명 보다는 펀드나 보험을 가입하라는 권유의 말을 더 많이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11년 10월부터 2012년 9월)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대포통장은 4만3268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3분기 중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를 통해 대출사기로 피해 신고 된 건수가 5403건(연간 환산 약 1만 건)인 점을 감안할 때 연간 약 6만개 이상의 대포통장이 범죄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의 근절대책이 나온 후에도 대포통장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앞서 김 씨의 경우도 고의는 아니지만 대포통장 유포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다. 대출 한 번 받으려다 사기 '가해자 겸 피해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통장 개설 시 양도를 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단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은행들에게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유를 묻자 고객 편의를 위해 설명을 생략한 것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놨다.

A은행 관계자는 "이러한 사항은 직원들에게 메일, 교육 등을 통해 알리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매번 고객에서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설명하면 제대로 듣지 않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를 근절하고 단속해야하는 금융당국의 태도도 금융고객들의 분노를 샀다.

금감원 신용정보팀 관계자는 "특별하거나 굉장히 큰 문제가 있어서 개선을 해야 할 정도의 이슈는 아니라고 본다"며 "금융고객과 은행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채널 거래가 느는 상황에서 직원과 직접 만나는 은행 창구는 고객에게 정보를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며 "좀 더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예금통장이나 카드 등을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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