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7 03:55 (금)
[기획] ‘100세 시대’, 신탁 노 젓는 은행들
[기획] ‘100세 시대’, 신탁 노 젓는 은행들
  • 안소윤 기자
  • 승인 2021.03.09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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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내 신탁 수탁고가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했다.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상속과 증여, 은퇴 이후 대비를 위한 장기 자산관리 수단으로서 신탁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앞서 고령화와 저금리 시대를 맞은 해외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시장은 이제 막 태동기다. 차세대 주요 수익처로 꼽히는 신탁 시장에서 입지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변주를 시도 중인 은행권의 움직임과 시장 발전 및 활성화에 뒷받침이 돼줄 제도의 개선 방향을 살펴봤다.

신탁서 고령화 해법 찾은 美·日

신탁은 위탁자와 수탁자, 수익자의 3자 계약 구조 특성으로 인해 다른 어떤 금융상품보다 자산관리 설계, 상속지원, 성년후견 등 고령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복합 금융서비스를 수행하는 장점이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근로기간 동안 축적한 자산들을 소득화해 생활비로 충당하고, 잔여 자산을 상속·증여하거나 사회에 기부하면서 생애를 마감하는 전반의 프로세스를 종합적으로 서비스하는데 가장 탁월한 수단으로 신탁을 활성화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부터 재산관리와 부의 이전 등 재산관리 목적 신탁이 발전한 미국은 고령사회 진입 이후 상속 과정에서 신탁의 편리성과 비용효율성이 부각되며 신탁업 규모가 확대됐다.

개인고객 대상 시탁은 유산관리신탁, 후견인신탁, 유언신탁, 유언대용신탕 등이 대표 상품이다. 미국 신탁시장은 지난 2010년 16조9000만달러에서 연평균 2.7% 성장해 2019년에는 국내총생산(GDP)와 유사한 규모인 21조6000만달러까지 커졌다.

지난 1994년 고령사회, 2005년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경우 금융규제 개혁을 통해 신탁업을 발전시켰다.

신탁업자의 재신탁 설정, 불특정금전신탁 판매, 신탁자산의 합동 운용 등으로 신탁업자의 자율적인 자산운용을 허용해 지정금전신탁(위탁자에게 투자를 일임), 포괄신탁을 활성화했으며 수급 연령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금법을 개정, 연금저축신탁 수요를 늘렸다. 

또 2010년 이후에는 상속세·증여세 개정, 세법 개정 등을 통해 세대 간 자산이전을 초기에 촉진하는 방식으로 신탁시장에 대한 지원을 지속했다.

일례로 지난 2013년부터 30세 미만의 손자녀에게 교육자금 증여 시 비과세혜택을 제공한 것은 추후 교육자금증여신탁이 성장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이밖에 일본의 주요 은행들은 유언대용신탁, 후견제도신탁 등 다양한 고령층 대상의 상품을 개발하고 유언장 작성·보관, 장례서비스, 가업승계 컨설팅 등 지원 서비스를 통해 신탁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고객을 유지하는 도구로 신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 신탁시장은 지난 2009년 765조2000만엔에서 연평균 4.2% 성장, 2019년 총 수탁고는 1250조6000만엔을 기록했다. 이는 일본 GDP의 2.2배에 달하는 규모다.

꿈틀대기 시작한 신탁 블루오션

국내 신탁 수탁고 역시 지난 2010년 220조원에서 2015년 601조, 지난해 1032조를 기록하는 등 빠른 속도로 불고 있다. 그러나 GDP 대비 50%에 불과해 아직도 ‘블루오션’이다.

해외와 달리 국내 신탁 시장의 수요 대부분은 기관투자자와 법인으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종합재산신탁은 활발히 운용되지 않고 있다.

개인 대상 신탁은 개인의 수요와 상황을 감안한 장기 자산관리서비스 보단 일회성 금융상품 판매 수단의 역할에 그친다.

전체 수탁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금전신탁(502조원)은 은행과 증권사의 상품 규제 회피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종합적인 자산관리 측면보다는 개별 금융상품의 단순 판매채널로 인식된다.

수탁고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신탁(334조원)은 수익성 높은 개발 사업에만 편중돼 유동화증권 발행, 리츠 등 금융기능을 활용한 종합적인 신탁서비스 제공이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고령화에 대비해 활용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후견신탁, 증여신탁 등 종합재산신탁은 수탁고의 0.02%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은행들은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에 대응한 상품을 개발하고 출시함으로써 고령화 등 고객 환경 변화에 맞춰 신탁 본연의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신탁에서 양육비를 관리해 미성년 자녀에게 직접 지급되도록 설계한 양육비 지원 신탁과 치매 환자의 자산관리와 상속집행의 기능을 하는 치매안심·성년후견지원신탁, 본인 사망 후 장례비용을 지급하는 가족배려신탁 등 노년생활에 맞춰 신탁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마련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기부자가 가입금액의 50%를 기부, 50%는 연금으로 수령하는 나눔신탁을, KB국민은행은 반려동물의 양육자금을 맡기고 본인 사망 후 양육자에게 자금을 지급하는 펫코노미신탁과 조부모·부모가 자녀들이 특정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증여·상속을 설계할 수 있는 금지옥엽신탁을 운영 중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신탁제도가 들어보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많이 나오는데, 아직 신탁제도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며 “은행들은 시장변화에 따라 중장기적인 호흡을 갖고 신탁을 알리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성장 이끌 법개정 ‘재시동’

국내 신탁 시장의 지속 성장을 위한 정부의 ‘든든한 뒷배’ 역할론도 대두된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신탁법을 개정해 다양한 신탁상품이 출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나 상위법인 자본시장법 상 수탁가능재산이 금전, 증권, 부동산 등 7종으로 한정돼있고 부동산과 비부동산의 인가가 분리돼있는 등 신탁활용도 제고에 어려움이 많은 상태다.

신탁법 개정 이후 신탁 가능 재산 확대, 재산신탁제도 도입, 수익증권 발행신탁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마련됐으나 제19대 국회에서 계류 후 기간만료로 폐기됐으며 지난 2017년 금융당국의 금융개혁 중점과제로 신탁업 전면개편이 선정되면서 논의가 재개됐으나 금융기관 간 역할에 대한 이견으로 중단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하반기, 효율적인 장기·종합 자산관리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신탁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발표(2020년 금융위 업무계획)했다.

금융위는 신탁이 유연성, 자율성을 회복해 종합재산관리 서비스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독자적인 ‘신탁업법’ 제정 등 규율체계 전반을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수탁가능재산을 부채, 영업권, 담보권, 보험금청구권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신탁업 진입장벽을 낮춰 신탁별 관리·운용에 특화된 전문 신탁업자를 출현시켜 시장 발전을 위한 건전한 경쟁 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또 재신탁 허용으로 포괄적 재산을 수탁받아 전문신탁사에 운용을 위탁할 수 있게 할 계획이며 위탁자 재산 취합(pooling)도 허용돼 자산운용 효율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신탁의 종합재산관리 기능 활성화를 위해 신탁세제 개편도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연구위원은 “국내 신탁세제는 신탁제도가 가지는 유연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지원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신탁을 활용한 조세회피행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탁에 부과되는 세금은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 및 증여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다양한데 각각의 세목이 가진 목적과 부과 방식이 신탁의 경제적 기능을 지원할 수 있도록 납세주체와 소득의 성격에 관한 합리적인 세제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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