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처럼 침향목 향 씌워 옛 단청 그대로 유지한 전각
가을 부석사 주인공은 ‘은행나무’, 봄 부석사는 ‘산벚나무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국보로 지정된 ‘무량수전’이 유명하다. 무량수전 옆으로 조사당 오르는 길에서 등을 돌려 산아래를 바라보면 펼쳐지는 그림은 그 자체가 장관이다. 태백과 소백의 산들이 말 달리듯 이어달린다. 부석사가 마치 ‘호연지기’를 끌어안은 듯하다. 사진은 지난 9월 촬영한 것이다.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국보로 지정된 ‘무량수전’이 유명하다. 무량수전 옆으로 조사당 오르는 길에서 등을 돌려 산아래를 바라보면 펼쳐지는 그림은 그 자체가 장관이다. 태백과 소백의 산들이 말 달리듯 이어달린다. 부석사가 마치 ‘호연지기’를 끌어안은 듯하다. 사진은 지난 9월 촬영한 것이다.

가을에 만나는 부석사는 은행나무의 노란색이 주인공이 된다.

사철 다양한 볼거리를 주는 사찰이어서 연중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지만, 노란 단풍이 주는 산사의 풍경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인지라 가을 끄트머리에도 여전히 길손들이 몰린다.

부석사의 은행나무는 절집 사람들이 사찰을 꾸미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에 비해 수형은 작지만, 일주문에서 시작돼 고즈넉한 절집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그만한 나무들이 없다.

은행나무가 워낙 많아서일 테지만 사찰에 있는 은행나무 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이 제법 된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와 충북 영동의 영국사, 그리고 경북 청도의 적천사 은행나무 등은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나무들이다.

산비탈을 따라 차례로 땅의 모양을 이어 붙이듯 지어진 전각들, 그리고 이 풍경을 굽어보며 멀리 웅대한 스케일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안양루와 국보로 지정된 무량수전 등.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경치는 물론 절집 건물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 아름답지만, 이를 넘어서는 풍광 하나가 세인의 기억을 장악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조사당 가는 길로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눈앞에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안양루를 포함해 사찰의 주요 건물들이 발아래에 잡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태백과 소백의 산들이 남쪽을 향해 말 달리듯 이어 달리는 장관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무량수전이 바라보는 풍광이다.

이 풍광은 오늘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풀어 쓴 안양루의 중수기를 살펴보면 “몸을 바람난간에 의지하니 무한강산이 발아래 다퉈 달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넓고 넓은 건곤이 가슴속으로 거둬 들어오니 가람의 승경이 이와 같음은 없더라.” 한마디로 최고의 풍광을 지녔음을 그들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 알려진 ‘선비화’ 나무이다. 의상대사는 천축국으로 떠나면서 석단 위에 지팡이를 꽂으며 “이 지팡이가 살아 있음을 내가 살아 있음으로 알라”라는 말을 남기도 떠났다고 한다. 선비화는 골담초의 별명이며 잘 자라면 2미터까지 큰다고 한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 알려진 ‘선비화’ 나무이다. 의상대사는 천축국으로 떠나면서 석단 위에 지팡이를 꽂으며 “이 지팡이가 살아 있음을 내가 살아 있음으로 알라”라는 말을 남기도 떠났다고 한다. 선비화는 골담초의 별명이며 잘 자라면 2미터까지 큰다고 한다.

시선의 높이는 권력의 크기와 비례한다. 산의 정상에 올라 굽어보는 경치가 권력의 시선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평지에서의 각종 움직임은 물론 자연의 흐름까지 정상에선 빠짐없이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런 까닭에 동아시아의 전쟁이 산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높이를 점령하면 땅과 강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이가 보여준 경치를 즐겼다면, 부석사의 핵심 건물인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자. 안양루 누각 밑을 거쳐 오르면 눈에 잡히는 전각이 부석사의 대표 건물인 무량수전이다.

물론 시야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정교한 솜씨로 조각된 석등(국보 17호)이지만, 눈을 가득 채우면서 다가오는 것은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무량수전이다.

국보(제18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창건연대가 확인된 목조건물(1043년) 중 가장 오랜 것이다.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그리고 느티나무로 세운 기둥은 기둥 가운데 부분이 위와 아래보다 더 두꺼운 배흘림 양식을 사용해 시각적으로 더 큰 느낌을 자아내는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색이 바래지고 있는 단청을 새롭게 가필하지 않고 옛 단청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건물을 지은 후 침향목의 향을 피워 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최초의 단청 빛깔을 확인할 수 있고 건물의 견고함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란다.

무량수전을 보았다면 그 주변의 나무에도 눈길을 한번 주자. ‘부석(浮石)’, 즉 떠 있는 돌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선묘의 설화를 담고 있는 ‘부석’ 새김돌 옆으로 화사하게 엷은 핑크빛 꽃을 피우는 산벚나무와 무량수전 앞에서 하얀 배꽃을 나무 가득 알을 품은 듯 피우는 돌배나무가 봄의 전령사 구실을 한다.

그리고 그 선묘를 기리기 위해 만든 선묘각 앞에는 절집에 어울리지 않는 밤나무 한 그루가 버티듯 자리한다.

누군가는 초여름에 피는 밤꽃의 향을 탓하며 베어내자고도 했을 나무지만,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며 가람을 만든 부석사의 건축양식을 고려한다면 그것마저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부석사만의 자연스러움이리라.

선묘각에서 좀 더 발길을 내딛으면 만나게 되는 조상당 앞에는 이 절의 창건자인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선비화’를 보게 된다.

그런데 나무의 보호를 이유로 촘촘한 철망에 가리워져 모양새를 한눈에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 밖에도 부석사에는 천왕문 주위로 전나무와 측백나무, 그리고 앞서 설명한 은행나무가 숲을 이룬다. 곧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면 그래서 이곳은 상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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