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넘은 광산김씨 집성촌, 호수와 어우러진 경치
안동의 식문화 담은 《수운잡방》 등 보물 쏟아져 나와

군자마을은 사철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봄가을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겨울은 하얀눈에 덮힌 설경이 주어진다. 사진은 군자마을 내에 있는 탁청정 건물. 영남지역의 정자 중 규모가 제법 큰 건물이다.
군자마을은 사철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봄가을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겨울은 하얀눈에 덮힌 설경이 주어진다. 사진은 군자마을 내에 있는 탁청정 건물. 영남지역의 정자 중 규모가 제법 큰 건물이다.

안동호를 따라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선비길 중간에 군자마을을 만날 수 있다. 안동호를 끼고 있는 군자마을은 야트막한 산자락 안에 햇살 잘 들게 자리하고 있다. 

오천리 군자마을의 유래는 안동부사로 왔던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 말에서 시작됐다. 

물론 현재의 군자마을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의 군자마을이 수몰될 예정이어서 종택과 누정 약 20여 채를 옮겨와 새롭게 조성한 곳이다.

이 마을의 유래는 광산김씨 예안파 농수 김효로(1455~1534)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오천에서만 6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군자마을을 유명하게 한 것은 각종 고서와 고문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전을 위해 해체하던 후조당의 천장에서 교지와 호구단자 등 고문서 2000점과 고서 2500권이 쏟아져 나왔고, 이중 고문서 7종 429점은 보물 제1018호로, 고서 13종 61점은 보물 제101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후조당 대종택은 후조당 김부필의 종택이다. 군자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한 칸의 건물로 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사랑방이 있는 건물이다.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은 김부필의 제사를 위해 마련된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에 동쪽 모서리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건물이 이어 붙은 ‘ㄱ’자형 건물이다. 

그래서 넓은 대청을 가지고 있고, 온돌방도 따로 마련돼 있다. 종택의 위치가 언덕 위여서 대청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안동호를 따라 선비길을 걷다보면 오천리에서 군자마을을 만날 수 있다. 광산김씨 집성촌인 군자마을은 20여채의 고책과 누각으로 이뤄졌으며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한다. 사진은 후조당 종택과 설월당 종택.
안동호를 따라 선비길을 걷다보면 오천리에서 군자마을을 만날 수 있다. 광산김씨 집성촌인 군자마을은 20여채의 고책과 누각으로 이뤄졌으며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한다. 사진은 후조당 종택과 설월당 종택.

군자마을에서는 올해 또 하나의 보물이 나왔다. 탁청정 김유와 계암 김령이 이어 쓴 《수운잡방》은 전해오는 고조리서 중 유일하게 보물 제2134호로 지정됐다. 

《수운잡방》은 군자마을에 내려오는 집안의 고조리서다. 우선 탁청정 김유가 쓴 부분에는 총 86가지 요리법이 적혀 있는데, 이 중 41가지가 술 빚는 방법을 적은 것이다. 

손자인 김령이 쓴 부분에도 18가지의 술 빚는 법과 17가지의 음식요리법이 나온다.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요리책의 절반 정도가 술 빚는 법으로 채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술빚기가 가능해지려면 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퇴계 이황의 저작에 등장한다. 

“항아리에는 맛있는 술이 넘쳐난다.” 여러 종류의 술이 빚어졌다는 의미다. 

퇴계의 기록을 더 살펴보면 집 옆에는 정자가 있었는데, 김유가 모두 수리해 넓혔다고 나온다.

더욱이 오는 손님을 맞아 언제나 가는 것을 만류하며 술을 권했고, 간혹 밤을 새워도 피곤한 빛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퇴계의 글로 미뤄 보면 김유는 재력이 뒷받침돼 많은 술을 빚었고, 친교를 좋아해 손님과의 술상도 마다하지 않았고, 술까지 제법 마시는 주당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퇴계의 글에 등장하는 정자가 바로 김유가 호로 삼은 탁청정이다. 

탁청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누각이다. 누마루와 온돌방이 있는 탁청정은 정자의 규모로도 상당한 크기라고 할 수 있다. 

김유가 쓴 ‘탁청’은 굴원의 ‘어부사’에서 차용한 것이다. 한 어부가 나 홀로 깨끗하면 된다는 굴원을 비판하며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관의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라고 노래했다고 하는데 김유는 여기서의 ‘청’과 ‘탁’을 뒤집어 정자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밖에도 군자마을에는 읍청정, 설월당, 낙운정, 침략정 등의 종택과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봄가을의 새벽에는 안동호에 안개가 깔려 군자마을을 하얗게 뒤덮는다. 

특히 단풍이 드는 가을은 고택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그림처럼 어우러지고, 눈 내린 겨울은 흑백필름처럼 마을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각각의 종택이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종택 기행을 떠나는 것을 권해본다. 누마루에서 바라보는 안동호의 모습과 눈 덮힌 군자마을의 절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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