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큰한 향과 부드러운 목넘김에 조선 문인들 푹 빠져
안동김씨 가양주로 남아, 권희자 명인이 대 이어 양조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해주는 서울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남산 한옥마을에서 가진 서울시 무형문화축제 행사장에서 찍은 권희자 명인과 태권 소년 파비앙의 모습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해주는 서울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남산 한옥마을에서 가진 서울시 무형문화축제 행사장에서 찍은 권희자 명인과 태권 소년 파비앙의 모습이다.

마포 나루는 조선시대 한양의 물류 중심지다. 세곡선과 소금을 실은 배들이 쉼 없이 드나들던 곳이 마포를 포함한 삼개나루다.

이곳에 조선시대 한양을 대표하던 술이 있다. 음력 정월 첫해(亥, 돼지)일부터 짧게는 36일, 길게는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킨 술이다. 이름은 해일마다 세 번 빚는다고 하여 삼해주(三亥酒).

추운 겨울의 차가운 기온을 이용해서 장기간 발효하는 술인 삼해주는 빚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달달한 맛과 높은 알코올 감을 지니는 술이다. 굳이 돼지를 뜻하는 해일을 잡아서 술을 빚은 것은 그날이 12간지 중 가장 깨끗한 날로 여겼기 때문이다.

서울시에는 삼해주를 빚는 두 사람의 명인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삼해약주의 권희자 명인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대표 술이라고 할 수 있는 삼해주는 서울에서만 사랑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18세기의 고조리서에는 100여 가지 이상의 술이 등장하는데, 주방문 기록 빈도가 가장 많은 술이 삼해주라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조리서에 나오는 술의 제조법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술 고문헌 DB’에서만 확인하더라도 30여 종 정도의 책에서 삼해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음식디미방》과 《온주법》, 《증보삼림경제》 《정조지》 등에는 2~4개 정도의 삼해주 주방문이 기록돼있을 만큼 민간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술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역과 시기가 다양해서인지 조리서마다 주방문이 다르다. 멥쌀과 찹쌀의 쓰임새는 물론 수량도 다르며, 술덧을 만드는 방식도 고두밥, 죽, 구멍떡, 설기 등 사용 가능한 방법들이 다 등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쌀에 밀가루를 넣는 방법도 있으며, 멥쌀만으로 삼해주를 빚는 주방문도 있다. 또한 잔당이 많이 남아 덧술에 주로 사용하는 찹쌀을 처음부터 밑술에 넣는 경우도 있다.

현존하는 고조리서 중 가장 오래된 《산가요록》에서는 찹쌀을 가루로 만들어 죽을 쒀서 밑술을 담그고 그 뒤 두 번의 덧술은 멥쌀을 가루 내어 죽으로 쒀서 담근다고 나온다. 이렇게 빚은 술은 버들개지가 필 때 걸러서 마신다고 하는데 버들개지는 버드나무꽃의 우리말이다.

두 번째로 오래된 고조리서는 지난 2021년 여름에 보물로 지정된 《수운잡방》에 등장한다. 수운잡방에서는 밑술과 두 번의 덧술 모두를 멥쌀로 빚으며 세 번 모두 가루를 내는데 밑술은 죽으로 끓이고 덧술은 모두 설기를 만들어 빚는다. 두 책의 큰 차이점은 술의 재료와 쌀의 처리 과정이다.

《산가요록》은 찹쌀죽을 밑술로 썼고 《수운잡방》은 멥쌀 죽을 사용했다. 또한 《산가요록》은 모두 죽으로 술을 빚었고 《수운잡방》은 죽과 설기를 썼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삼해주는 절기에 맞춰 빚는 술이지만, 상황에 맞춰 술의 재료와 방식을 달리해서 빚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권희장 명인이 삼해주를 담기 위해 빚는 누룩을 시연하고 있다. 삼해약주의 누룩은 다른 누룩과 달리 밀가루로 빚어 백곡이라고 부른다.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권희장 명인이 삼해주를 담기 위해 빚는 누룩을 시연하고 있다. 삼해약주의 누룩은 다른 누룩과 달리 밀가루로 빚어 백곡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서울을 대표하며, 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삼해주가 일제강점기를 맞으며 사라지기 시작한다. 조선시대에 내려진 수많은 금주령에도 꿋꿋하게 버텨 왔던 삼해주가 조선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양주를 금하는 주세법과 주세령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그나마 집안의 가양주로 몰래 술을 빚어왔던 안동김씨 가문과 통천 김씨 집안에 살아남아 1990년 이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가 돼 주었다. 안동김씨 가문에선 권희자(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8호) 명인이 삼해약주를 빚어왔으며 통천김씨 집안에서는 이동복 명인으로 이어져 삼해소주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명맥을 잇고 있다.

안동김씨 가문에 궁중의 술인 삼해주가 전해진 것은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가 이 집안에 시집을 오면서부터다. 공주와 함께 온 나인들에 의해 궁중의 삼해주 제조법은 자연스레 안동김씨 집안의 며느리들에게 건네졌다. 권희자 명인도 이 집안의 며느리로서 집안의 술을 빚어 온 것이다.

권희자 명인의 삼해주는 저온에서 100일가량 발효 숙성시키는 ‘큰 삼해주’다 정월 첫 번째 해일에 멥쌀을 가루 내어 범벅을 만들고 누룩을 넣고 치대서 밑술을 빚는다. 이때 사용하는 누룩은 밀기울을 제거해서 하얗게 가루를 내어서 만든 백곡이다. 2월 해일에는 멥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뜨거운 물을 넣고 익반죽을 만들어 덧술을 하고 마지막 덧술은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서 마무리한다.

멥쌀만을 사용하는 방식은 《수운잡방》과 유사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누룩과 덧술에 밀가루를 쓰는 점은 권 명인의 삼해주의 다른 점이다. 이렇게 빚은 삼해주는 버드나무꽃이 피는 시기에 마실 수 있다 해서 ‘유서주’ 또는 ‘유서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멥쌀로 빚었지만, 입안 가득 달큰한 향이 맴돈다. 알코올 도수도 제법 높을 텐데 목넘김은 부드러운 술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왜 이 술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맛이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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