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기 짜게 밴 해풍 이겨내고 천연기념물 지정된 나무
성장 늦고 강한 생명력, 고목의 기풍 서려 분재로도 인기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에는 외로이 서있는 소사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 나무는 해풍에도 불구하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돼 있다.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에는 외로이 서있는 소사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 나무는 해풍에도 불구하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돼 있다.

오래전 일이다. 신년을 맞아 강화도의 마니산 참성단이 일반에게 개방됐다. 이때 참성단 오른쪽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이름도 생소한 소사나무였다.

나무의 식생을 알지 못했기에 갯바람 강하게 부는 강화도, 그것도 바람을 막아줄 다른 나무나 큰 바위 같은 지형지물도 없는 곳에서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생소하게만 다가왔다. 참성단이라는 단군왕검에게 제사 지내는 곳에서 만난 나무이니 전설 하나쯤은 있나 싶었으나 이 나무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래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다지 웅장하지도, 멋스럽지도 않았던 나무가 천연기념물(제502호)로 지정돼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소사나무가 그렇게 많지 않아 보호되고 있거나 필자가 모르는 사연이 하나쯤은 깃들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나중에 안 사실은 소사나무가 우리나라의 온대 지방, 그것도 해안을 중심으로 자라는 나무였다. 거칠고 소금기 잔뜩 묻은 바람에도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줄기가 상해도 새싹을 틔우는 등 척박한 땅에서도 무리 없이 성장하는 나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때야 겨우 마니산 참성단에 홀로 서 있는 소사나무를 이해하게 됐다. 섬에 많이 자라고 영흥도 같은 곳에선 130년 정도 된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이때 안 사실이다.

참성단의 소사나무는 키가 대략 5미터 정도다. 가장 굵은 줄기의 둘레는 100센티미터가 되지 않았고 줄기는 8개다. 수령은 150년을 넘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유는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소사나무를 대표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신년 첫날에 가서 본 소사나무는 이파리를 다 떨군 외로운 나무였다. 푸른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줄기와 가지가 주는 이미지는 겨울 찬바람과 함께 차갑게만 다가왔다.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 있는 소사나무는 분재로도 유명한 소사나무의 쓰임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느리고 이파리가 작은데다 고목의 풍모도 지녀 인기가 많은 나무다.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 있는 소사나무는 분재로도 유명한 소사나무의 쓰임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느리고 이파리가 작은데다 고목의 풍모도 지녀 인기가 많은 나무다.

두 번째로 본 소사나무는 경기도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정갈하게 전지가위로 다듬어져 있는 소사나무였다. 이 나무를 봤을 때 강화도의 소사나무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마니산을 자주 갔지만 정상의 참성단을 개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므로 녹음이 풍성할 때의 천연기념물 소사나무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침고요수목원의 소사나무에는 ‘모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소사나무에서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의 풍성함을 어머니의 후덕함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수목원에 있는 ‘모정’을 보면서 생각한 정갈하고 깔끔한 이미지는 소사나무의 또 하나의 쓰임새와 맥을 같이 했다. 최소한의 영양분으로도 생존할 수 있으며 너무 빨리 자라지도 않고 생명력은 강한데다 이파리는 고작 2~3cm 정도로 달걀모양인 나무가 펼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었다.

당연하게도 분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수종으로 꼽히는 나무다. 잎이 작고 줄기의 모양도 자유분방해 크지 않으면서도 고목의 풍모를 느낄 수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소사나무의 특징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이 나무는 분재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구체적인 재배 방법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라고 한다.

소사나무의 이름은 이 나무와 비슷한 서어나무의 한자 이름 서목(西木)에서 시작된다. 서어나무는 서울 경기지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로 나무의 줄기가 울퉁불퉁 근육질처럼 보이는 나무이다.

이 나무보다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 소서목인데, 소서나무가 소사나무가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리고 서녘 서(西)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 나무가 척박한 곳, 즉 습기가 많고 햇빛이 덜 드는 곳에서도 잘 자라는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새해다. 마니산 참성단의 소사나무도 새해를 맞았다. 이파리 하나 없이 모든 바람을 맞고 있지만, 이 나무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자로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흥도에 있는 소사나무 군락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무는 해풍에 쓰러지고 말았지만, 이 나무들은 지금까지 살아있다. 여건이 안 좋아도 살아남으려 하는 것이,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나무의 숙명이자 섭리다. 올해도 그 나무를 닮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소사나무처럼 살아남길 기원한다.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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