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껍질이 독특해 비호감이지만 가지는 한없이 부드러워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서울 궁궐에도 있어

줄기의 표면이 징그럽게 생겨서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나무가 있다. 시커멓고 두꺼운 껍질이 길쭉길쭉하면서 불규칙해서 뱀의 피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연한 가지는 말의 채찍으로 쓰여 ‘말채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줄기의 표면이 징그럽게 생겨서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나무가 있다. 시커멓고 두꺼운 껍질이 길쭉길쭉하면서 불규칙해서 뱀의 피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연한 가지는 말의 채찍으로 쓰여 ‘말채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무의 줄기는 강건하지만 가지는 대체로 부드럽게 휘어진다. 

이렇게 부드럽게 휘어지는 가지를 볼 때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낭창낭창’이라는 부사어다.

가늘고 긴 막대기가 부드럽고 탄력 있게 흔들릴 때 쓰는 말이다. 

20여 년 전에 개봉한 영화 중에 ‘와호장룡’이라는 작품이 있다.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의 출세작 중 하나다. 

이 영화의 중반에 주윤발과 장쯔이가 나뭇가지를 밟으며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나뭇가지도 그렇고 그들이 쓰는 칼날도 그렇고 심지어 배우들의 움직임도 모두 ‘낭창낭창’하다. 거목의 큰 가지는 보통 사람의 몸무게를 견뎌내지만 작은 가지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영화에서 나뭇가지들은 무사하다. 중국의 무술 분파 중에 무당파라고 있다. 

영화에서 주윤발이 속한 집단이 무당파다. 

도교적 세계관을 가진 집단이다.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우선이다. 무위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하는 바도 그렇다. 20년도 더 된 이 영화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무 중에 ‘낭창낭창’을 대명사로 가진 나무가 하나 있다. 대나무는 아니다. 결코 낭창하게 부드럽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무의 줄기는 낭창한 부드러움을 가질 수 없다. 세월을 담고 있는 나무일수록 줄기는 견고해지고 두터워진다. 

노거수가 될수록 나무의 역할도 많아져 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면 더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우선은 생존을 위한 선택일 것이다. 강해야 쓰러지지 않고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를 지붕처럼 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지는 처지가 다르다. 부드럽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낭창낭창한 가지를 가지고 있어서 말의 채찍으로도 사용되었던 나무가 있다. 말채나무다. 

말채찍이 줄어들어 말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지가 부드러워서 낭창낭창함을 미덕으로 지닌 나무지만 줄기의 표면이 징그럽게 생겨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은 나무다. 

사람이나 나무나 첫인상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특히 요즘 같은 때는 더 그렇다. 말채나무는 그런 점에서 손해를 보는 나무이기도 하다. 

마치 허물을 벗어놓은 뱀의 피부 같은 무늬라고 말해야 할까. 수령이 좀 된 말채나무의 줄기를 보면 시커멓고 두꺼운 껍질이 길쭉길쭉하면서 불규칙하게 갈라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봄에 물이 올랐을 때 가늘게 늘어진 가지는 한없이 낭창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 나무다.

말채나무와 관련한 하나의 전설이 있다. 지네가 이 나무를 싫어해 주변에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전설과 관련이 깊을 듯싶다. 

말채나무는 야산은 물론 우리의 고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초여름 하얀색의 꽃은 꽃무리를 이를 정도여서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는 나무다. 사진은 창경궁에 있는 말채나무다.
말채나무는 야산은 물론 우리의 고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초여름 하얀색의 꽃은 꽃무리를 이를 정도여서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는 나무다. 사진은 창경궁에 있는 말채나무다.

어느 산골 마을에 한가위 보름달이 뜨면 천년 묵은 지네가 떼거리로 몰려들어 공들여 키운 곡식을 모두 먹어 치웠다고 한다. 

당연히도 마을 사람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고, 이를 알게 된 한 젊은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한가위 보름달이 뜨기 전에 독한 술 일곱 동이를 마을 어귀에 놓아달라고 요청한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의 말대로 술을 빚어 어귀에 뒀고, 보름달이 뜨자 지네들이 나타나 정신 없이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이때 청년이 나타나 지네의 목을 모두 베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면서 가지고 다니던 말채를 땅에 꼽았는데 그것이 말채나무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지네는 실제로 말채나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 심어진 당산나무 중 말채나무가 있다면 그것은 마을을 지네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비방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말채나무는 경상북도 청송 개일리에 있는 당산나무다. 

높이 15미터에 줄기의 둘레가 3.6미터를 넘어선 나무다. 수령도 350년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이외에도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되는 나무가 십여 그루 정도 더 있다고 한다.

말채나무는 야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서울의 궁궐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경복궁 수정전 앞에도 거목으로 성장한 100년 가까이 된 나무가 있었지만, 궁궐의 복원과정에서 잘려나갔다. 

그렇지만 경복궁에는 이 나무 외에 여러 그루가 남아 있다. 또한 창경궁에서도 말채나무는 만날 수 있다. 

꽃이 피는 시기는 초여름이다. 꽃차례가 제법 큰 모양이다. 

마치 꽃다발처럼 풍성하게 피면 하얀색의 꽃무리가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열매는 가을에 까맣게 익으며 말랑말랑한 과육 안에 단단한 씨앗이 들어있다. 이 열매는 늦가을과 겨울 동안 산새들의 먹이가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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