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대출 용도·상환법 사전 확인
은행들 소극적 태도…“실효성에 의문”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모습. 사진은 아래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모습. 사진은 아래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2022년 1월 10일 16: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체계 내실화를 위해 도입한 ‘대출 사전심사제’가 시행 주체인 은행들로부터 필요성 공감을 얻지 못하고 실속 없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올해부터 가계대출을 취급할 때 사전심사에서 ‘업계 공통 체크리스트’를 활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10월 ‘가계대출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금융사가 대출 취급 시 금융소비자보호법상(금소법) 판매 규제인 적정성·적합성 원칙을 엄중히 적용하게 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약탈적 금융의 피해를 조기에 차단하고, 거시적으로는 가계부채를 더이상 경기부양 수단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사전심사 체크리스트에는 △자금사용 용도 △총자산 및 부채 규모 △연소득 대비 고정지출 규모 △대출 상환 종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소법 시행 이후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들이 자체 운영 중인 적정성·적합성 확인 절차 중 모범 사례를 선별해 만들었다.

제도가 시행된 지 1주일여가 지났지만, 은행들의 참여도는 저조한 상황이다. 대출 사전심사제는 자율규제로 권고사항일 뿐 은행에 강제적인 수용 의무는 없다.

은행들이 대출 사전심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이미 신용평가기관(CB) 정보와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구축한 신용평가모형(CSS)을 돌려 체계적이고 면밀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고객이 직접 써준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 사전심사 과정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대출 사전심사제는 사실상 투자성 가계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게 중점인데 고객에 대한 구두 질문, 혹은 설문지에 작성한 답변을 토대로 자금사용 용도와 상환 방법 등을 확인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며 “대출 실행 후 은행 측에서 사실을 확인하기도, 고객 입장에서도 서류 등으로 증빙해내기도 어려운 사안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 시행에 맞춰 일부 지점에 양식을 만들어 배포하긴 했지만, 사전 체크 내용이 실질적으로 대출 심사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대출 사전심사제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지난해 체크리스트 작성 당시에도 제기됐으나 배포되기까지 개선된 내용은 없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본 심사가 이뤄지기 전 1차적 허들이 생기게 된 만큼, 약탈적 대출에 대한 필터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올해부터 금소법 이행 여부를 검사하는데 체크리스트 활용도를 살펴보고, 건의사항이 있으면 항목을 개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출 사전심사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선 금융당국의 꾸준한 관심과 현장 실태를 반영한 개선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소법 상의 적합성, 적정성 여부 준수를 위한 대출 사전심사제도 도입만으로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등 투자 목적 용도의 대출, 과소비성 대출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며 “은행들도 장기적으로 과도한 부채 위험을 낮춰 이익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연구원은 “법의 이해 부족으로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나 감독당국이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면 대출심사 체계가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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