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25도로 떨어진 뒤 IMF 거치면서 경쟁적으로 낮춰
여성 사회참여 늘면서 양성 모두 마실 수 있는 도수 찾아가

1973년 이전까지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0도였다. 박재서 명인안동소주 박물관에는 전국의 소주병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 한 가운에 있는 ‘백구’ 소주병에 알코올 도수를 의미하는 ‘30’의 숫자가 선명하다. ‘백구’는 대구에서 생산되던 소주로 대형양조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금복주에 흡수됐다.
1973년 이전까지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0도였다. 박재서 명인안동소주 박물관에는 전국의 소주병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 한 가운에 있는 ‘백구’ 소주병에 알코올 도수를 의미하는 ‘30’의 숫자가 선명하다. ‘백구’는 대구에서 생산되던 소주로 대형양조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금복주에 흡수됐다.

벚꽃 흐드러진 날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을 확인하며 이별을 고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그 덕분에 가장 아름다운 이별 장면으로 남은 영화가 한 편 있다. 

2001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20대 청춘들이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사랑의 통과의례를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와 강릉방송국의 DJ를 겸한 PD 은주(이영애 분), 두 사람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소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소리를 전문으로 채집하는 상우와 소리를 전문적으로 소비하는 은주의 조합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실행하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다르다. 

이혼의 아픔을 경험했던 은주에게 사랑은 인스턴트 라면처럼 가벼워야 부담이 없었고, 그래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우는 시간 속에서 숙성되는 김치 같은 사랑을 원한다. 

음식으로서 라면과 김치는 잘 어울리는 궁합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조합이다 보니 두 사람의 사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간극만을 확인하게 된다. 

사랑이 어디 달콤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에게도 그런 시련은 다가온다. 

시인 최승자의 ‘여자들과 사내들’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시구처럼 ‘벼락처럼 다가와서 정전처럼 끊어지’듯 사라진 사랑의 감정은 상우에게도 성장통을 가져다준다. 

멀어져 가는 은주를 잡을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며 실연의 아픔을 겪는 상우에게 아버지는 소주를 건넨다. 

소주는 그 순간 치유제의 상징이다. 아픔을 그대로 두지 말고 소주로라도 덜어내 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그 아버지도 그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을 테니 말이다. 상처 입은 상우는 먹던 컵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자신의 고통을 한 두어줌은 덜어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소주 한 병으로 가실 아픔이라면, 우리는 굳이 사랑을 젊음이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재자의 권력욕이 빚어낸 10월 유신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 그 당시의 주당들이 마신 소주는 30도였다. 

이듬해인 1973년, 소주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도수를 5도 내린다. 

그 덕분에 1970, 80년대에 청춘의 시절을 보낸 이들의 기억 속의 소주는 알코올 도수 25도이다.

1973년 8.3조치를 거치면서 정부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당연히 소주 가격도 동결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도수 내리기였다. 고육지책의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소주 업체들을 기쁘게 해줬다. 

알코올 도수 25도의 소주는 애주가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마시면 ‘크’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남자의 술로서 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25도로 장수를 누리던 소주는 25년 만에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1973년 25도가 된 이래 1998년 IMF금융위기 이전까지 줄곧 유지된다. 그해 2도가 내려 23도가 된 소주는 21세기를 맞아 지금의 16.9도까지 계속 떨어졌다. 음주 인구 구성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사진은 전북 완주에 있는 술테마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소주병이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1973년 25도가 된 이래 1998년 IMF금융위기 이전까지 줄곧 유지된다. 그해 2도가 내려 23도가 된 소주는 21세기를 맞아 지금의 16.9도까지 계속 떨어졌다. 음주 인구 구성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사진은 전북 완주에 있는 술테마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소주병이다.

허진호 감독이 황동규 시인의 시 ‘즐거운 편지’를 영상으로 제대로 구현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한 1998년의 일이다. 

그해 연말, IMF 외환위기가 찾아와 우리 사회 전체가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던 그 시기, 진로에서 ‘참이슬’을 발표하면서 23도로 알코올 도수를 낮췄다. 

시인 안도현은 ‘퇴근길’이라는 시에서 그 시절, 소시민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아, 이것마저 없다면”

 시인은 단 두 줄짜리 시에 모든 것을 다 담았다. 삶의 팍팍함은 물론 위로받고 싶은 심정. 그리고 사회적 관계까지 두 줄에 고갱이를 넣었다. 

외환위기는 산업화한 대한민국이 구조적으로 전체의 틀을 변화시켜야 했던 사건이다. 

변화는 강요되었고, 수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구조조정도 일상이 됐다.

이렇게 힘들게 버텨내듯 살아야 하는 직장생활에서 삼겹살과 소주는 최상의 궁합을 유지해줬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머니 사정이 답답해도 이런 낙이라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시절 팍팍한 삶은 23도의 소주로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참이슬’의 23도 선택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처럼’으로 대박을 냈던 두산주류(현 롯데주류)도 도수 낮추기 경쟁에 동참한다. 21세기의 첫 번째 10년 동안 소주 업계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알코올 도수를 내렸다. 그리고 현재는 16.9도까지 내려와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내려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소주는 더 이상 남성의 술이 아니었다. 

선호하는 술들이 각각 다를지라도 회식 등의 술자리는 공통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주종이 소주였다. 그래서 주류업체들은 소주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알코올 도수까지 내리고 또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그 소주를 마시고 ‘크’ 소리를 낼 수는 없다. 소주가 더는 남성의 술이 아니니 소리를 낼 수 없다고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도 없을 듯하다. 

그 소리를 원한다면 우리 농산물로 만든 더 좋은 술들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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